올리브영 갑질 과징금 19억원…‘시장지배적지위’ 입증 못 한 공정위

입력 2023-12-07 18:27

수천억원 과징금 부과가 전망되던 공정거래위원회의 CJ올리브영 제재가 18억9600만원 과징금으로 마무리됐다. 핵심 혐의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입증되지 않은 탓이다. 공정위가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시장 획정’을 시도했으나 헛발질로 끝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올리브영의 EB(Exclusive Brand) 정책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해당하는지 심의했으나 심의절차종료로 결론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심의절차종료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때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다. 이후 재조사가 이뤄진 경우가 드물어 사실상 무혐의다.

EB는 올리브영에만 단독 납품하는 브랜드다. 올리브영은 경쟁사인 랄라블라, 롭스 등과 거래하지 않는 조건으로 EB에 광고비 인하, 행사 참여 보장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검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정위 심사관은 올리브영이 헬스앤뷰티(H&B) 시장에서 점유율 70%가 넘는 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지위를 남용해 EB들에게 자사와의 독점계약을 강요했고 그 결과 경쟁사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됐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라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H&B 시장은 직접 제품을 체험하는 특징이 있어 온라인 시장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반면 전원회의 위원들은 올리브영의 주 판매품목인 화장품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모두 판매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화장품 온라인 구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만큼 관련 시장을 H&B 시장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현재는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지위 판단을 유보하는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내렸다.


업계는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가 인정되면 최대 600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심사관이 전원회의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올리브영은 면죄부를 받게 됐다. 다만 김문식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CJ올리브영의 EB 정책이 시장경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일부 행위는 위법성이 인정됐다. 공정위는 올리브영의 납품업체 갑질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이라고 판단,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올리브영은 2019년부터 최근까지 자사 행사 당월과 전월에 납품업체가 경쟁사에 동일 품목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2019년 3월~2021년 6월에는 인하된 가격으로 상품을 납품받은 뒤 행사 종료 후 기존가격으로 판매하며 차액을 돌려주지 않고 8억48만원을 부당하게 가로챘다. 2017년 1월~2022년 12월에는 납품업체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사 전산시스템을 이용하도록 해 순매입액의 1~3%인 1700억원을 정보처리비 명목으로 가져갔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