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주식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 산정 모범규준을 손보면서 증권사들이 이용료율 인상에 나섰다. 이용료율 산정 주기를 분기 1회 이상으로 조정하고, 공시를 세분화하라는 요구지만 사실상 이용료율 인상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증권사들은 하나둘 이용료율을 올리면서도 ‘과도한 요구’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47조5450억원이다. 예탁금은 연말 주가 상승 기대에 48조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사는 투자자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맡기고, 증권금융은 자금을 운용한 뒤 발생한 수익을 증권사에 돌려준다. 이 수익의 일부를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이용료로 지급한다. 10월 기준 증권금융의 운용 수익률은 3.87%다.
증권금융의 수익률 대비 증권사의 예탁금 이용료율은 낮은 편이다. 연 1%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당국이 압박하면서 2%로 올리는 증권사까지 등장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4일부터 예탁금 100만원 이하는 연 2%, 100만원 초과는 연 0.75%로 인상했다. 기존에는 50만원 미만 연 0.1%, 50만원 이상 0.75%였는데 대폭 올린 것이다. 키움증권은 10월 8일부터 50만원 이상 0.25%에서 1.05%로 올렸다.
하지만 이용료율 인상을 검토하는 증권사들의 속내는 편치만은 않다. 증권사가 예탁금으로 자금을 직접 운용하지도 않는데 이용료율을 올리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는 것이다. 또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이자율이 높게 형성돼 있는데도 예탁금 이용료율까지 올릴 이유는 없다고 항변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의 자유 입출금 계좌에 대해서는 이자율을 올리라는 요구를 하지 않으면서 이용자가 언제 찾을지 모르는 대기 자금에 대해 이용료율을 올리라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높은 금리가 필요한 투자자는 CMA를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만 고금리 상황에서 이용료율이 1%대로 낮은 데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증권사들이 이용료율을 0.5% 포인트 올리면 약 2400억원의 이용료가 추가 지급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위 20개 증권사가 투자자 예탁금으로 올린 수익은 올해 3분기 누적 1조1988억원이었지만 고객에게 지급된 예탁금 이용료는 2397억원으로 예탁금 수익의 20%에 그쳤다. 금융투자협회는 홈페이지의 예탁금 이용료율 공시를 종류별·금액별 등으로 세분화하고, 기간별 추이를 추가하는 등 증권사별 비교가 쉽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