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저한테 갖는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스스로는 한계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기대감이 있달까. 가수 역할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아는 나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기효능감이랄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저를 나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배우 박은빈을 보고 있자니 그가 연기한 ‘무인도의 디바’ 속 목하가 겹쳐 보였다. 아무리 모진 풍파를 겪어도 내면의 단단함으로 스스로를 믿고 뚫고 나가는 모습이 닮은 듯했다.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가 자체 최고 시청률 9.0%를 기록하며 종영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의 소속사에서 박은빈을 만났다. 박은빈은 무인도에서 15년을 지내다 구조된 뒤 가수의 꿈을 이루게 되는 서목하를 연기했다. 지난해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큰 사랑을 받은 뒤의 차기작이었던 만큼 대중의 기대도 컸다.
박은빈은 “작년에 받았던 관심은 살아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부담감에 눌리고 싶지 않아서 항상 그랬듯 하고 싶은 작품, 그때그때의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당시 제 마음을 두드린 게 이 작품이었다”며 “연예계와 닿은 역할이다 보니 인간 박은빈의 복잡다단함을 목하라면 단순하게 타파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목하의 밝고 긍정적인 면모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지만, 가수라는 역할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드라마의 예고편이 공개되고 회차가 거듭되면서 박은빈의 수준급 노래 실력에 시청자들은 놀람과 궁금증을 쏟아냈다. 원래 노래 실력이 좋았냐는 것. 하지만 박은빈은 “제가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실력은 0에 수렴한다”고 말하며 멋쩍어했다. 그는 지난 1월 중순부터 레슨을 시작해 하루 3시간씩 약 6개월 간 43번의 레슨을 받았다. 박은빈은 “김규남 음악감독님이 말씀하시길, 녹음실에서 있었던 상황이 진정한 디바 도전기였다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결국 노력으로 만들어낸 노래 실력이었던 것인데, 박은빈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노래를 배운 건 이유가 있었다. 그는 “목하는 란주(김효진)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하는데 저를 연기할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드라마의 진정성이 와닿지 않겠다는 경계심이 들었다”며 “그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의 하나가 노래였다. 결국 노래가 목하를 표현하는 가장 큰 연기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은빈은 항상 새롭고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왔다. 그래서인지 ‘도전의 아이콘’처럼 비치곤 하는데 그는 이런 시선에 손사래를 쳤다. 박은빈은 “저는 도전의 아이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중에게 피로감을 주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다”며 “감사하게도 이번엔 제가 노력한 걸 알아봐 주셨지만 언제나 알아봐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바라는 건 제가 한 걸 재밌게 봐주시고 마음 편히 즐겨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서 대상을 탄 그는 점점 커지는 기대감에 부담을 표하면서도 “그냥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게 삐끗하지 않을 것 같다”며 의연하게 말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흥행이 될지를 생각하기보단 의미를 찾는 편이에요. 당시의 선택이 제 최선이었음을 믿을 수 있다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우영우처럼 모두의 예측을 벗어난 초대박 작품이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거에 맞춰서 작품을 선택하다 보면 본질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