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버스라니…”
5일 오후 11시30분 서울 마포구 합정역 버스정류장으로 하얀색 ‘심야A21’ 버스가 천천히 들어왔다. 파란색, 초록색, 빨간색 버스들 사이에 유독 튀었다. 버스 전광판에는 ‘서울심야자율차’라고 적혀있었다.
퇴근 후 버스에 올라탄 직장인 임수지(28)씨는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곧바로 안전벨트를 착용한 임씨는 “일반 시내버스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자율로 이동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심야A21은 지난 4일 오후 11시30분 첫차를 시작으로 세계 최초로 심야 자율주행을 시작했다. 버스는 마포구 합정역에서 종로구 동대문역까지 대학가와 대형 쇼핑몰 등 심야 이동 인구가 많은 구간을 오간다.
자율주행 버스 운행 소식에 일부러 정류장을 찾은 사람도 많았다. 이날 버스가 도착하기 약 20분 전부터 정류장에 와 기다리던 대학생 최모(25)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호기심에 한 번 타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심야A21은 일반 시내버스와 동일한 크기로 현대차 일렉시티를 개조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 좌석에 안전벨트가 설치돼 있고, 입석도 금지된다. 당분간 취객 대비와 버스의 완전한 정차 뒤 하차를 유도하기 위해 특별안전요원과 시험운전자가 탑승한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최고속도 시속 50㎞, 평균 주행속도 시속 40㎞로 운행된다. 이 버스를 만든 업체 에스유엠(SUM)의 박상욱 부장에 따르면 시험주행 결과 최대 시속은 47㎞로 측정됐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시스템이 보수적으로 설계돼 있다 보니 탑승자들은 약간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버스 앞 차선이 비어있으면 속력을 올려 운전하는 게 보통이지만, 심야A21은 평균 속도를 유지했다. 임씨는 “퇴근하면 집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은데, 속도가 느려 자주 탈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급정거도 잦았다. 심야A21은 경찰청 신호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받아 버스 전방의 신호등이 몇 초 뒤 빨간색 불로 바뀔 것인지까지 계산해 운행된다. 그러다 보니 주행 중 속력을 갑자기 줄이고 다시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귀갓길에 자율주행버스에 탑승한 박현수(37)씨는 “살짝 멀미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돌발 상황도 발생했다. 다른 버스가 심야A21을 추월해 끼어들면서 운전석에 앉아있던 버스 기사가 자율주행모드를 끄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버스 안내판에 보라색으로 나오던 자율주행ON 표시도 빠르게 회색의 자율주행OFF로 바뀌었다. 그 탓에 승객 9명의 몸이 앞으로 쏠리기도 했다. 탑승객 정호준(62)씨는 “운전석에 사람이 없었으면 아찔했을 것 같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바로 대처가 가능하니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도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심야A21을 당분간 무료로 운영하면서 운행 안정화 과정을 거쳐 정규 노선화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미래첨단교통과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노선을 청량리까지 확장하고 유료화할 것”이라며 “가격은 기존 심야버스 가격인 2500원보다 저렴하게 책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