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서안지구 내 팔레스타인 정착촌에서 폭력을 행사한 일부 이스라엘인에 대한 입국 금지 방침을 밝혔다.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비난 여론이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강력한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스라엘 정부에 강조해 왔다”며 “서안지구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개인에 대한 새로운 비자 제한 조치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서안지구의 불안정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민 모두에게 해를 끼치고, 이스라엘의 국가 안보 이익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는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라고 악시오스는 설명했다.
국무부는 이날 즉시 이스라엘 수십 명에 대해 입국 금지 조처를 하고, 조만간 추가적인 비자 제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미 미국 비자를 보유한 경우에도 이를 취소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내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하마스 공격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하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이스라엘) 공격은 하마스 공격 이전에도 많았고, 이후 더욱 확대됐다”며 “이스라엘 정부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처벌받지 않고 활동하도록 용인해 왔다”고 지적했다.
유엔은 지난 10월 7일 이후 서안지구에서 최소 8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정착민들에 의해 살해됐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팔레스타인 소유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314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정착민 공격 3건 중 1건은 총기 위협이었고, 절반가량은 이스라엘 군대와도 연관됐다고 ABC 방송은 지적했다. 집을 버리고 피신한 팔레스타인 정착민도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팔레스타인 정착민에 대한 공격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도 지난달 30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을 때도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향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리는 조처를 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조치는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급등하면서 미국 내 무슬림·아랍계 여론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두 국가 해결책을 달성하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반대하는 극우 이스라엘 정착민을 통제해야 한다고 NYT는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내년 대선 선거자금 모금 행사가 열린 매사추세츠주에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최대한도의 고통을 가했다”며 “우리 모두가 강력하게, 모호함 없이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성폭력을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당시 성폭력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왔다. NYT는 이스라엘 경찰이 하마스 성범죄 목격자와 의료진 증언 1500여 건을 수집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