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낸 개그맨 양세형 “시는 놀이이자 일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입력 2023-12-05 15:14
개그맨 양세형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시집 '별의 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시 한 편 보냅니다.//당신이 좋아하는/저의 시는요,/제겐 너무 쉬운 글입니다.//당신을 생각하고요…//떠올리는 단어만 적으면요…//그렇게 아름다운/시 한 편이 된답니다.”(시를 쓰게 하는 당신에게)

개그맨 양세형(38)이 시집을 냈다. ‘별의 길’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그의 첫 시집에는 이 시를 포함해 88편이 시가 담겼다. 시집 제목이 된 ‘별의 길’이라는 시는 양세형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즉석으로 쓴 것으로 온라인을 통해 널리 퍼졌다. 그가 후배 개그맨의 결혼식에서 자작시를 낭독해준 영상은 유튜브에서 1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양세형은 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시집 출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시를 쓰는 건 저 혼자만의 놀이였다”며 “동두천 시골에서 자랐는데, 혼자 있을 때면 왠지 모르는 아름답고, 멋있고, 슬픈 감정들이 떠올랐고 그런 감정들을 글로 쓰면서 혼자서 놀이를 했던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는) 놀이이기도 하지만 저의 일기 같은 것”이고 “제가 제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며 “글을 쓰는 게 진짜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를 쓰면서 위로받는 건 행복한 감정보다 슬픈 감정인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시집 마지막에 실린 시 ‘1909호’를 예로 들면서 “모든 게 꼬이고 실망하고 안 좋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높은 오피스텔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쓴 글”이라며 “글로 쓰면 제가 제 자신에게 얘기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마음이 풀리는 게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글을 쓰면서 이겨낸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남은 건/빨간 소주 한 병과/달걀프라이 반숙 두 개”로 시작되는 이 시는 “아픔을 닦으면 내일은 웃음이다”로 끝난다.

맨 앞에 실린 ‘싸릿마을’ ‘아빠’ ‘코미디언’, 세 편에서 제시된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연예인의 삶이라는 주제가 시집 전체에서 반복된다. 양세형의 시는 쉽고 짧다. 그러면서도 단조롭지 않다. 리듬감이 뛰어난 데다 아이 같은 마음이 어른의 현실 속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집 속에는 시와 함께 조각가 박진성의 ‘아저씨’ 조각상들이 배치돼 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이인, 웃고 있지만 속은 울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은 양세형의 마음인 것처럼 보인다. 양세형은 “조각상 얼굴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다”면서 “사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어른인 척 하지만 나도 아직 아이인데’ 하며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시는 어렵고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양세형은 이번 시집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놀이로, 또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로 시를 보여준다. 그는 “초등학생도 유치원생도 읽을 수 있는 단어들로 시를 썼다”면서 “돌이켜 생각하면 어렸을 때 배웠던 단어들이 제일 예쁜 것 같더라. 다행히 그 단어들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집도 자주 읽는다고 했다. “불면증이 심했는데 누가 책을 보면 잠이 온다고 해서 글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왜 책을 읽고 시를 읽으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 혼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정적인데, 커피 두 잔 값을 지불하면 다른 사람이 되게 힘들게 얻은 감정을 배울 수 있다.”

시집 인세는 전액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설립한 등대장학회에 기부한다. 양세형은 “방송을 하면서 등대장학회를 알게 됐다”면서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는 곳이라고 해서 인세를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