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제패하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 당해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평생 조제핀을 사랑하면서도 함께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없었다.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코르시카 출신 깡패’는 누구보다 출세했지만, 한편으론 누구보다 불행했다.
세계사의 대표적인 전쟁 영웅이자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나폴레옹’이 오는 6일 개봉한다. 영화는 전쟁터의 나폴레옹과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 생각했던 나폴레옹의 두 가지 면모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영화는 20대의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육군 포병이었던 나폴레옹은 1793년 툴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장군이 된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야망을 품게 된 나폴레옹은 한 사교 모임에서 매력적인 여성 조제핀(바네사 커비)을 만난다.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던 미망인 조제핀은 단숨에 나폴레옹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처음엔 나폴레옹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긴 구애 끝에 나폴레옹과 조제핀은 결혼식을 올리고 두 사람은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삶의 굴레를 쓰게 된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도 아내에게 편지쓰는 일은 잊지 않았지만 조제핀은 바람을 피우다 걸린다. 그런 조제핀을 용서할 정도로 나폴레옹은 광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인이 황제에 오른 후에는 조제핀이 후계자를 낳지 못해 결국 이혼한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지지자로서 존재한다. 나폴레옹이 눈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프랑스, 군대, 조제핀”으로 전해진다.
영화는 역사 속 장면들을 스펙터클하면서 구체적으로 재현하며 볼거리를 선사한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1808년작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과 흡사하게 연출됐다. 나폴레옹은 당시 관습대로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받지 않았고, 스스로 왕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아이를 가지지 못해 “우리의 결혼은 프랑스의 번영에 장애물이 됐다”며 눈물로 이혼 선언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영화 제작자인 케빈 윌시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원동력이 되었고 서로가 없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군사전략가인 나폴레옹을 보여주기 위해 전투 신에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나폴레옹’은 툴롱, 아우스터리츠, 마렝고, 보로디노, 워털루 전투 등을 압도적인 스케일로 재현했다. 얼어붙은 호숫가에 대포를 쏴 적들을 수장시키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장면, 방진을 세운 영국군 주위를 프랑스 기마병들이 돌고 멀리서 오스트리아 기마 부대가 몰려오는 모습을 연출한 워털루 전투 장면은 사실감과 긴장감을 더한다.
‘글래디에이터’(2000) 이후 20여년 만에 재회한 리들리 스콧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는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그녀’ ‘조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등에서 매번 연기 변신을 보여준 호아킨 피닉스는 영웅의 굴곡진 인생과 복잡미묘한 내면을 설득력 있는 연기로 표현한다. ‘미션 임파서블’ ‘분노의 질주’ ‘더 썬’ 등으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바네사 커비는 당찬 면모로 나폴레옹을 쥐락펴락하다가 쓸쓸히 죽어가는 조제핀의 모습을 그려냈다. 러닝타임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