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증권사’ 불법공매도 자료 두고 잡음

입력 2023-12-04 17:10 수정 2023-12-04 22:02

금융감독원이 560억원대 불법 공매도 사실이 적발된 외국계 증권사들에 대해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4일 금감원 공매도특별조사단 공매도조사기획팀은 BNP파리바와 HSBC의 무차입공매도 적발 건과 관련해 대상 종목명, 수량, 부당이득 등을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금감원 측은 “특정 기업의 불공정거래 등에 대한 조사 여부 및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의 공개는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재판에 관련되거나 검찰 수사와 관련된 사항이 공개될 경우 범죄 수사, 공소 제기 등 직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공정한 재판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8개월여간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사실을 적발했다.

홍콩 HSBC도 2021년 8~12월 동안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실제로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하는 투자 기법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사서 되갚는 기법이다. 7만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6만원으로 내렸을 때 사서 갚으면 1만원의 시세차익이 생긴다.

정상적인 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린 상태에서 진행되기에 만약 주가가 예상과 반대로 오르게 되면 수익은커녕 손실을 보기 쉽다. 하지만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실제로 빌리지 않고 공매도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 같은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때문에 국내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외국계 증권사 등이 무차입공매도를 진행한 뒤 악재 등 풍문을 퍼뜨려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린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 180조는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두 외국계 증권사의 무차입 공매도 관련 자료가 공개될 경우 시장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외국계 증권사가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금융·수사당국의 업무 방해 가능성을 열어둬선 안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자료 비공개 관행에 개인투자자들은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익 차원에서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알리는 조치는 시장참여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의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금융당국의 이 같은 모습을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 같다”며 “이미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상당한 우대를 받아 큰 수익을 내왔다. 그들보다는 자국민 투자자 보호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국내 대형 증권사의 허위 공매도 적발 사실과 관련해 해당 종목과 수량을 공개해달라는 한투연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공개 결정을 내렸다. 당시 금감원이 공개한 ‘공매도 위반 종목 및 수량’ 문서에 따르면 938개사 1억4089만주(5조9504억원어치)가 허위 공매도 대상이 됐다. 금감원은 이 사건 대상이 된 모든 종목명을 모두 공개했다. 다만 이 건의 경우 이미 제재가 완료된 상태에서 정보가 공개됐다는 점에서 BNP파리바·HSBC와 차이가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치 중인 사안의 경우 제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세부 자료를 공개하지 않도록 돼있다”며 “조치가 완료되고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안이 확정되면 두 달 후 세부 내용이 담긴 회의록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