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 당국이 도로 표지판에 병기된 영문을 모두 중국어로 바꾸고 있다고 대만 자유시보가 보도했다. 영어 수업 금지, 외국 교과서 규제 등 정책에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의 ‘영어 금지령’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대만 자유시보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해 “베이징시 당국이 중·영 병기 도로표지판을 전부 중국어 표지판으로 바꾸고 있다”며 “‘베이징이 첫 발을 쐈다’는 내용의 토론이 웨이보와 틱톡, 소후, 왕이 등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베이징시 교통부가 도로안전과 교통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어·영어 도로 표지판을 모두 중국어로 교체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베이징시 교통부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영문 병기 없이 중국어로만 적힌 교통 표지판들이 안내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시 주석이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영어 금지령’이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교육계 등을 시작으로 영어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꾸준히 펼쳐왔다. 2021년에는 상하이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영어 기말고사를 폐지했다. 일부 지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들은 학교와 대학 입시 핵심 과목으로 영어 폐지를 제안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20년에는 중국 정부가 초·중학교 외국 교과서 사용 규제 계획을 밝혔다. 중국 밖에 있는 외국인 교사의 온라인 영어수업이 금지됐고 국제 커리큘럼이 있는 학교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 시안교통대학은 지난 9월 영어시험 성적을 학부생 졸업 및 학사 학위 수요 조건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지난해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는 베이징시 지하철 안내 표지판 영어 문구가 중국어 병음으로 교체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병음은 중국어 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발음 부호다.
중국 매체 지무뉴스는 “이 소식은 사실이며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전했다.
자유시보는 이에 대해 “얼마 전 시 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났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계속해서 좌회전을 하고 있다”며 “베이징 지하철역의 영어 이름을 중국어 병음으로 바꾼 것도, 도로 표지판을 교체한 것도 서구와 단절하겠다는 큰 신호”라고 설명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