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한 사람한테 왜 당했냐고 묻기보다는 괴롭힌 사람한테 왜 괴롭혔냐고 묻는 게 더 맞지 않나요?”
종종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학교 폭력과 군대 내 가혹행위,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유 따위는 없는 일상적이고도 무차별적인 괴롭힘. 영화 ‘비밀’은 이렇게 일갈한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으며 모든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고.
‘비밀’은 한밤 중 화장실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사체에서는 10년 전 군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영훈(윤동원)의 일기 조각이 발견된다. 피살자와 영훈이 군 복무를 함께한 사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강력반 형사 동근(김정현)은 이들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나간다.
동근은 당시 군대 내 가혹행위의 ‘배후’였던 제약회사 임원 성현(박성현)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쉽게 풀리는 듯했던 수사는 곧 미궁으로 빠진다. 성현 역시 앞선 살인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것이다. 그러던 중 동근은 죽은 영훈이 자신의 학창시절 친구였다는 걸 알게 된다. 잊고 있던 기억 속 진실은 그렇게 하나둘 드러나고 만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 속에서 주인공 동근 역의 배우 김정현은 극의 묵직한 중심을 잡아준다.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괴로워하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그 강렬함은 극이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점차 증폭된다.
‘비밀’은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추적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장르적 쾌감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풀어낸다. 범죄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영화는 각 캐릭터로 하여금 감정적 공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결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기획 의도와 맞닿아 있다.
연출은 맡은 소준범 감독은 “범죄를 고안하고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과 범죄 이면에 죄의식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함께 연출한 임경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기억에서 잊힐 만큼 사소한 말과 무심코 한 행동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공동 연출한 임 감독과 소 감독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다. ‘사람’에 대한 중심적 메시지에 공감해 이 작업을 함께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임 감독은 ‘광복절 특사’ ‘실미도’ ‘공공의 적2’ 등 연출팀을 거쳐 ‘주유소 습격사건2’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조감독으로 활약했다. 소 감독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제5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 ‘헬로’로 제34회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실력자로 ‘비밀’이 장편 데뷔작이다. 오는 13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