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앞으로의 통화 긴축 기조에 대해 “6개월보다 더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준금리 결정에서 중요한 지표로 삼는 물가상승률이 한은 목표치인 2%로 수렴하는 시점을 이 총재는 2024년 말, 혹은 2025년 초로 봤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현행 3.50%에서 7회 연속으로 동결했다.
이 총재는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며 “긴축 기조가 6개월보다 더 될 것이라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긴축 기조를 지속할 기간에 대한 전망으로 그동안 금통위에서 채택했던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을 ‘충분히, 장기간’으로 바꿨다. 오해를 받을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 총재의 설명이다. 한국‧미국‧유럽을 포함한 주요 경제권 중앙은행이 더는 긴축 기조를 이어갈 수 없다고 보는 시장의 관측에 지지하는 듯한 ‘신호’를 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율 3.50%로 동결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 1월 마지막으로 0.25% 포인트 인상돼 현행 3.50%까지 상승한 뒤 7회 연속(2·4·5·7·8·10·11월)으로 고정됐다.
한·미 간 금리 차는 상단 기준 2.0% 포인트로 유지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현행 기준금리는 5.25~5.50%다. 연준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지만,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포함한 시장은 ‘금리 정점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총재도 이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물가 경로가 상향 조정되고, 비용 상승 파급 효과의 지속성, 앞으로 국제유가 움직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추가 금리 인상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나머지 2명의 금통위원은 “물가만이 아닌 성장과 금융안정을 함께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이 총재는 전했다. 이 총재는 또 “지난달 19일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언급한 금통위원 1명은 이날 당시의 발언을 철회했다”고 부연했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4%로 유지했지만, 내년의 경우 2.2%에서 2.1%로 0.1% 포인트 하향했다. 반면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올해 3.5%에서 3.6%, 내년의 경우 2.4%에서 2.6%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한은 목표치인 2%대로 수렴하는 시점에 대해 “내년 말이나 2025년 초반 정도로 예상한다. 우리가 미국보다 빠르게 2%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한은의 첫 번째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렸지만 금리를 올릴지, 현 수준을 오래 가져갈지를 여러 요인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시장 일각에서 ‘경기 침체를 면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이 총재는 반론을 펼쳤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섣불리 경기를 부양하다 보면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다. 중장기 문제가 더 있을 수도 있다”며 “성장률 문제는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하려 해야 한다.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성장률이 낮다고 부양하고 금리도 낮추는 게 바람직하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다’다”라며 “어려운 계층은 재정정책을 통해 도와야 한다”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심할 단계도 아니다. 높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부담이 증가할 것이다. 건설사 등에서 고금리로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