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구할 것이 없다’ 남겨” 조계종 결론… 경찰 합동감식

입력 2023-11-30 13:18
30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요사채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승려가 사망한 칠장사 화재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원인 규명을 위해 합동 감식에 나섰다. 조계종은 자승 전 원장이 스스로 분신을 선택했다는 결론을 내놨다.

경기남부경찰청은 30일 도경 과학수사과, 안성경찰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오전 11시 칠장사 화재 현장에서 합동으로 감식을 시작했다. 감식 참여 인원은 17명이다. 합동감식팀은 최초 발화점과 소훼 형태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는 데에 주력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현장의 연소 패턴 등을 살펴보며 발화 원인과 확산 경로 등 전반적인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라며 “현장에서 감정이 필요한 잔해가 있을 경우 수집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6시50분쯤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소재 사찰인 칠장사 내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에서 불이 나 자승 전 원장이 사망했다. 자승 전 원장은 조계종 33대와 34대 총무원장을 지낸 조계종 고위 인사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를 맡고 있다. 그는 당시 칠장사를 방문해 요사채에서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대원들은 사찰 요사채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화재를 진압하던 중 건물 내부에서 자승 전 원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깊은 잠에 드는 시간대도 아닌데도 자승 전 원장 피신하지 못한 이유 등을 파악하고 있다.


자승 전 원장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는 그가 차량에 남긴 2장 분량의 메모 때문이다. 해당 메모에는 칠장사 주지 스님에게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았소”라며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것이고,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고 전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경찰에는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라고 말을 남겼다. 경찰은 메모에 대해서도 필적 감정을 할 예정이다.

조계종은 자승 전 원장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분신했다고 판단했다. 조계종 대변인인 기획실장 우봉 승려는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승 전 원장이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겼다”고 말했다.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쳤다는 것이다. 자승 전 원장이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승려가 사망 전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남겼다고 조계종은 전했다.

자승 전 원장은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의 상좌도 지냈다. 동화사, 봉암사 선원 등에서 안거 수행하고 수원 포교당, 삼막사, 연주암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5년간 과천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2004년부터는 은사인 정대스님이 만든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을 맡아 불교단체와 불교학자, 청년들을 지원하는 등 대사회활동도 진행했다. 그는 지난 2009년 55세에 역대 최고 지지율로 조계종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2022년에 상월결사를 만든 뒤 부처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는 전법 활동에 매진해왔다. 총무원장 퇴직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조계종 실세로 꼽혔다.

그는 최근까지도 강한 포교 의지를 보였다. 지난 27일에는 불교계 언론과 만나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불교계는 충격이 크다. 그의 선택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고인의 장례는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