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폐 이식을 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최근 장기 기증을 결정한 사연이 전해졌다. 피해자는 익명의 기증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나도 누군가에 내가 느낀 감정과 행복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식받은 지 벌써 6년째네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모(47)씨는 “2017년 이름 모를 천사님을 만나서 폐를 이식받고 새 삶을 산 지 6년 차”라면서 운을 뗐다.
김씨는 2010년 11월 18일에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550㎖’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생활화학제품 판매기업 옥시레킷벤키저와 위탁제조업체 한빛화학이 제조한 제품이다. 지난달 기준 이 제품의 피해자로 인정된 수는 78명에 불과하다.
김씨는 2017년 7월 7일 ‘특발성 폐 섬유증’을 진단받았고, 같은 해 9월 폐 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김씨는 폐 이식 후 5년 이내 생존 확률이 47%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식 2개월 차에 폐 속의 공기가 새어나가는 기흉을 한번 겪긴 했지만, 다행히도 이후 별다른 일은 없었다.
김씨는 “폐 이식을 받지 못하면 길어야 5개월 남은 시한부 삶이었다”며 “운이 좋게 폐 이식을 받고 새 삶을 살게 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밝혔다. 이어 폐 이식 전 자신의 상황에 대해 “당시엔 산소 호흡기 없이 단 10분 만이라도 밖에 나가서 해를 보고 싶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침을 안 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고 적었다.
김씨는 “폐 이식을 받은 뒤 눈 깜짝할 새에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숨 쉬는 행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며 “그 사이 새 삶을 살게 해주신 천사님을 잊고 살고 있었다”고 소회를 남겼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지금 느낀 감정과 행복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1월 22일 상담하고 당일 장기 조직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기증한 신체는 장기와 조직, 두 가지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한 사람의 장기 기증만으로 최대 8명이 도움을 받는다. 피부, 연골, 근막 등의 인체 조직의 경우 여러 환자들에게 고르게 분배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수혜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아직은 더 살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도 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의 처벌과 사과’라고 덧붙였다.
2011년에 처음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2014년 첫 공식 피해가 인정된 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2021년 10월에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등 주요 가해 기업 9곳에 최대 9240억여원에 달한 피해 분담금을 부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전체 보상액의 60% 가량을 내야하는 옥시와 애경은 해당 조정안에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해 기업이 피해 회복에 미적대는 사이 대법원은 지난 9일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모(71)씨가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와 위탁제조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제조사가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 지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7877명으로, 이 중 1835명이 사망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