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송·변전 설비 인근 지역 보상을 위한 재원을 한국전력 예산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한전은 법에 따라 매년 1500억원 가량을 송전망 주변 주민 보상금으로 지출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 예산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다만 서민 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4분기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한전이 전 국민이 내는 기금을 활용해 손실을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 산업 발전을 목표로 하는 전력기금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은 전력기금을 통해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지역에 보상금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전은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에 따라 연간 약 1500억원을 보상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한전이 전력망 구축 비용과 주민 보상금까지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47조원에 달하는 적자 사태를 겪고 있는 한전은 보상금을 기금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한전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산업부에 기금 사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의를 거쳤다. 6월부터는 송주법 개정 문구를 다듬었고 여당을 중심으로 법 개정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에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월 전력기금을 송전선 주변 주민 보상금으로 쓸 수 있는 내용의 송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 의원은 개정안 제안 사유에 대해 “송·변전 설비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을 촉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주민 반발로 인해 적기에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력기금을 사용해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력기금은 전기를 쓰는 모든 국민이 전기요금에 추가로 3.7%를 붙여 내야 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전력기금이 부과되는지조차 잘 알지 못하고, 어디에 얼마나 사용되는지는 더욱 더 모른다. 지난해 전력기금은 약 6조5000억원(결산 기준)에 달했다. 한전은 누적 기금이 수조원에 달하는 만큼 보상금에 1000억원 가량을 써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전력기금은 2001년 당시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도입했다. 공기업인 한전이 그동안 담당하던 전력 산업 발전과 도서·벽지 전력 공급 지원 등 각종 공적 사업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이 돈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원하는 등 역대 정부는 전력기금을 쌈짓돈처럼 써 왔다. 이에 따라 2019년 4조4700억원이던 전력기금 잔액은 올 연말 1조500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한전이 전력기금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 안전 관리나 전문 인력 양성 등으로 규정된 용처에 맞게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과 산업부는 올 4분기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며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낸 돈으로 조성된 전력기금을 통해 송전선 보상금을 지출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