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국제독립교회연합회)
이 일은 예수님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의 나병 환자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자리에 한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심하게 분노합니다. 분노의 이유는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겠다 라는 생각 때문 이지요.
제자들이 그럴 만도 합니다. 향유의 값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자그만치 삼천만원 정도의 거액이었으니까요, 마리아는 엄청난 낭비를 한 게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리아는 뭔가 모자란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제자들과 마리아의 마음이 달랐던 것이지요, 그것을 보고 계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 16:10)
이 말씀 앞에서 제자들은 어리둥절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렇지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16:11~12)
예수님은 이제 내일 모레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셔도 이것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마리아는 알고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제자들을 몰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성령도 각 사람의 마음에 임재하시기 전의 일이니 마음에 성령이 없었던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말이었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은 알았습니다. 그들은 죄인이었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자들, 비천한 죄인으로 멸시받던 사람들, 구원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구원자를 절박하게 찾고 찾던 사람들은 구원자를 만났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찾게 됩니다. 꼭 필요하니까 찾고 찾다보면 보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났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오신 것을 알게 되었고 이틀 후면 죽으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하실 것도 어렴풋이 알았을 것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되어 살이 썩은 시체였는데 예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부활생명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바로 이 부활 셍명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게 하고 죄인의 죽은 모든 생활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받았는데 삼천만원 어치의 향유를 어찌 낭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가치에 헌신한 것이지요, 그래서 복음에서는 이런 헌신이 따릅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