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해 수뇌부를 전격 교체한 것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국정원 내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기밀 사안이어야 할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인사 문제가 외부로 노출될 만큼 흐트러진 국정원의 기강을 이번 인사를 통해 바로 잡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문제를 놓고 김 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던 권춘택 국정원 1차장도 함께 옷을 벗게 됐다.
김 원장 교체설은 윤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방미를 앞둔 이달 초부터 언론을 통해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국정원 인사파동 중심에 있었던 전 대공방첩센터장 A씨가 또다시 국정원 내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김 원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같은 언론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어 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한·미·일 등 우방국간 정보교류 협력이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고, 북한 위협에 대응할 국정원 자체 정보수집 역량도 강화·보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윤 대통령이 영국·프랑스 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책성 경질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국정원 인사파동 때 김 원장을 한 차례 재신임한 바 있다. 당시 국정원은 김 원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A씨의 인사 전횡을 이유로 윤 대통령이 재가까지 마친 1급 간부 인사를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김 원장을 재신임하며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재신임 이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윤 대통령이 결국 김 원장을 교체하는 칼을 빼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후임자를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 원장의 사표를 먼저 수리한 점도 윤 대통령이 이번 사안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이해진 국정원의 기강을 잡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중도 엿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인사를 두고 치고 박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내부 사정이 언론 등을 통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 자체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의 기강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김 원장 후임을 물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최근 정찰위성을 발사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도 점증하는 상황에서 국정원장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는 만큼, 후임자 인선 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여권 안팎에서는 김용현 경호처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등이 후임 후보군에 올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