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 4월 한 모텔에서 성관계를 하던 중 여자친구인 피해자가 눈을 감고 있는 틈을 타 침대 옆에 있던 자신의 휴대전화로 나체를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무려 58차례에 걸쳐 길거리와 건물, 카페 등에서 여성의 다리와 엉덩이 부위 등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 황의조가 피의자로 입건된 성관계 촬영 사건처럼 연인이나 지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가 2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0월까지 발생한 불법 촬영 건수는 5551건에 달했다. 평균 매일 18건씩 불법 촬영 범죄가 일어난 셈이다.
불법 촬영 발생 건수는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8년 5925건이었던 불법 촬영 발생 건수는 지난해 6865건에 달했다. 해당 수치는 범죄행위를 인지하고 신고한 건수만 포함됐다. 실제 이뤄지는 불법 촬영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부터 5년간 불법촬영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겨진 피의자도 2만1979명에 달한다. 그러나 단순 불법 촬영의 경우 대부분 실형을 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N번방 사건 이후 불법 촬영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국민일보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서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기소돼 10~11월 형이 확정된 판결문 18건을 살펴본 결과 가장 무거운 처벌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A씨의 경우 성관계 도중 피해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했는데도 벌금 200만원이 선고되는 데 그쳤다. 재판부는 “불법촬영의 사회적 폐해와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를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고 촬영물이 곧바로 삭제됐으므로 공유·유포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았다는 점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촬영한 B씨도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불량하고 범행 기간이 길며 촬영횟수도 상당히 많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제3자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촬영·유포한 성행위 영상을 웹사이트 등에 재유포하면서 모욕적‧외설적 표현이 담긴 게시글 2건을 올린 C씨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촬영물 제작과 관련 없고, 경제적 수익을 얻은 것이 없는 점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양형기준의 현실화를 통해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복구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불법촬영 범죄 양형기준에 ‘감경’요인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가 감경요인으로 들어가 있다. 처벌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해야 하는데 피해자 개인에게 떠맡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가현 정신영 백재연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