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테슬라vs‘하이브리드’ 토요타, 新전쟁 개막

입력 2023-11-26 17:40 수정 2023-11-26 17:50
국민일보DB

글로벌 1위 완성차 기업인 일본 토요타와 왕좌를 뺏으려는 미국 테슬라의 치열한 패권 다툼이 시작됐다. 토요타는 전기차 분야에서 테슬라나 폴스크바겐은 물론 현대차·기아차보다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세계시장에서 하이브리드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최근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하이브리드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 하이브리드를 고집해 온 토요타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약진을 목격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머릿속도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테슬라라는 난적을 상대하는 토요타 역시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차 대신 ‘중간다리’ 하이브리드차 주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머스크의 도박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2030년 완성차 업계 1등을 노렸던 머스크는 하이브리드차의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토요타가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판매한 전기·하이브리드 차량은 45만5000대다. 1년 전보다 20% 증가했다. 테슬라는 미국 판매 성적을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리서치업체 모터인텔리전스는 이 기간 테슬라의 미 전기차 출하 규모가 약 49만3500대로 26% 늘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올해 3·4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순이익이 18억53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44% 줄었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수요 부진이 눈에 띄게 목격되자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한 영향이다.

전기차 성장률 둔화의 배경에는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향하는 과정에 ‘다리’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차의 존재감 확대가 있다. 토요타에서 북미 사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크리스트는 “업계에 전기차 열풍이 불었지만 하이브리드는 어느 정도 주류가 됐다”며 “우리는 정말 각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요타는 올해 상반기까지 4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에 올랐다. 지난 2분기에는 영업이익 1조1209억엔(약 10조1880억원)을 기록하며 일본 기업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조엔을 돌파했다.

토요타의 실적을 견인하는 효자는 단연 하이브리드차다.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보다 앞선 선택지로 지목된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비싼 가격 탓에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소비자들에게 합리적 가격을 어필한 마케팅은 적중했다.

전기차의 완전 대중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차를 우선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전기차처럼 충전 번거로움이 없는 것도 하이브리드차의 매력으로 꼽힌다.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회장은 전기차 분야에서 테슬라를 추격하기 위해 전기차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두고 “준비되지 않았을뿐더러 많은 고객이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경고해왔다. 토요타는 대다수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전환을 시도할 때 하이브리드차량을 고집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앨곤퀸의 토요타 대리점 모습. EPA연합뉴스

하이브리드 강화 vs 전기차 가격 인하

토요타와 테슬라는 주특기를 살려 ‘맞불 전략’을 펼치고 있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전략 강화로 순수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를 견제한다. 테슬라는 토요타의 이같은 하이브리드 강화 정책에 가격 인하로 대응했다.

이 두 완성차 업체 간 가장 치열한 격전지는 캘리포니아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에서 토요타의 인기 세단 모델들 판매량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토요타는 토요타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통해 미국에 총 26종의 하이브리드·전기차 차종을 판매하고 있다.

크로스오버 챠량인 테슬라 모델Y의 판매량은 올해 들어 9월까지 미 전국에서 토요타의 인기 세단 모델 캠리를 추월했다. 전기차 구매 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테슬라 모델3을 캠리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다.

머스크는 지난달 테슬라 연구원들에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차의 가격이 RAV4(도요타 하이브리드차종)와 같다면 아무도 RAV4를 사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테슬라가 토요타 입지를 갉아먹는 상황은 분명하다. 리서치업체 스트래티직비전에 따르면 미 테슬라 신규고객의 8%는 도요타 자동차를 타던 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토요타는 거세게 추격하는 테슬라를 따돌리기 위해 하이브리드차로 재무장한다는 방침이다. 토요타는 이달 캘리포니아 행사 당시 “신형 캠리가 처음으로 하이브리드로만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형 캠리의 가격 설정을 두고 토요타 내부에서 치열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분간 서로 차 가격을 낮추는 ‘가격 인하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토요타의 캠리 이전 모의 경우 하이브리드 버전이 일반 내연기관 모델보다 2500달러 저렴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