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향해 “그들의 피해에 공감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25일 커뮤니티 등에는 지난해 경찰관 A씨가 게재한 ‘보이스피싱 피해자 보면 정말 답답하다’는 제목의 글이 재조명됐다.
A씨는 “수사기관과 각 은행에서 홍보를 아무리 해도 (보이스피싱을) 당할 사람은 당한다”며 “피해자 관점에서 피해를 입은 사실은 틀림없기에 그들에게 공감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글을 시작했다.
A씨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A씨는 어느 날 50대 여성 B씨가 은행 창구에서 3000만원을 인출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은행으로 출동했다. B씨는 은행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며 인출을 만류하자 “내 돈을 내가 인출하는 데 왜 그러는 것이냐”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격분한 B씨에게 A씨는 “나같아도 내 돈을 내가 뽑는데 경찰을 부르면 기분이 나쁠 것 같다”며 “사적인 일에 개입해 기분이 나쁘시겠지만 요즘 보이스피싱이 빈번하기 때문에 잠깐 확인하러 온 것”이라고 타일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A씨는 “피해자에게 인출 목적이 무엇이냐 물어도 그들은 피싱 조직으로부터 지시받은대로 ‘그냥 두고 쓰려고’ ‘인테리어 자금’ 등의 답변을 내놓는다”며 “차라리 이런 답변은 양반이다. 심지어 ‘너희가 뭔데 상관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열어보고 피싱 여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A씨는 “요즘은 피싱 앱이 다운로드되는 경우가 많고 통화기록이나 문자 내역을 봐야 초동조치 판단이 가능하지만 피해자들은 대개 휴대전화를 넘길 생각이 없다”며 “그들이 범죄자도 아니고 내게 압수수색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억지로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은행원과 자신 모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면서도 사건을 막을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A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경찰서로 돌아와 ‘인적사항 불상 50대 여성, 소리를 지르는 등 비협조적으로 대응해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기록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A씨는 은행을 떠나고 30분 뒤 긴급신고번호(112)로 ‘3000만원을 대면 편취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30분 전 만났던 50대 여성 B씨가 울면서 길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A씨는 “울화통이 치밀어오른다”며 “경찰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사람으로서 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B씨는 경찰서로 이동해 진술서를 쓰던 도중 별안간 피해 책임을 경찰과 은행으로 돌렸다고 한다. B씨는 “은행이나 경찰에서 도와줬으면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아까 도와드리지 않았냐고 역으로 화를 내봐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며 “이런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는 ‘적극적으로 확인해서 보이스피싱을 막고 은행 방문해서 홍보를 강화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