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된 천양피엔비는 우리나라 전통한지의 자존심이자 역사다. 3대를 이으며 60년 가까이 전주는 물론 대한민국 한지의 명성을 이끌어왔다. 한지 벽지·장판과 물티슈 등을 만든 데 이어 이차전지 분리막 소재에 한지를 이용하는 방안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전북 전주에 있는 천양피앤비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가 선정하는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됐다. 2017년 시작된 명문장수기업 제도에 한지 제조기업이 뽑힌 것은 처음이다.
천양은 최영재(57) 대표의 선친 최장윤씨가 1966년 전주 흑석골에서 ‘호남제지’란 이름으로 창업했다. 1982년 기계한지 회사인 천양제지를 함께 연 뒤 1995년 ‘천양제지’로 합병했다. 2005년 최 대표가 가업을 이은 뒤 6년 전부터는 딸 수연씨가 경영 수련중이다.
2013년 종이(Paper)와 바이오(Bio) 전문회사로 재도약을 꿈꾸며 천양피앤비로 사명을 바꿨다. 공장은 완주군 소양면에 있다.
천양은 1970년부터 1990년 초반까지 대한민국 한지시장을 선도해 왔다. 4곳의 공장을 운영하며 직원도 250명에 이르렀다.
당시 서울 인사동 상인들이 차를 대기하고 기다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모두 현금을 싸들고 와 줄을 섰다는 것.
일본과 대만에 수출도 이어져 1993년 한지업체 최초로 ‘1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값싼 중국산이 몰려오자 다른 한지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상황을 맞이했다.
이에 천양은 자기 계발에 집중했다. 국내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발 빠르게 기계화에 나섰다. 화선지류에서 인쇄용과 건축용 한지 분야로 생산품목을 전환했다. 색지 한지를 비롯 벽지 한지, 장판용 한지를 잇따라 개발했다.
2007년엔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한지제조기업 최초였다. 이후 한지의 물성 연구와 닥나무 천연 추출물의 효능 연구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이같은 연구개발 능력을 바탕으로 천양은 10년전 바이오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닥나무 추출물을 활용하여 천연비누와 화장품, 바디용품 등을 출시했다.
2008년 반기문 사무총장 재임 당시 유엔 영빈관의 벽지와 장판 등을 꾸며줘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2017년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문화재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앙 2세 책상’을 복원하는데 이 회사의 한지를 사용했다.
천양은 2014년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 복본화 사업에도 11개 회사와 함께 참여했다. 더불어 해외에서 열린 전시회에 잇따라 참가해 ‘한스타일’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부턴 한국전통문화전당과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하는 ‘전통문화혁신성장융합 연구개발사업’을 2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천양은 또 부직포, 건축인테리어 시트 소재, 인쇄‧포장 소재, 필터 소재, 기능성 막 소재 등 플라스틱 시트가 대부분 잠식하고 있는 시장에서 친환경 대체 소재로 한지의 미래소재 개발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천양이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이차전지 분리막 소재에 한지를 이용하는 방안이다. 분리막에 들어가는 종이 소재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최 대표는 “일본 종이 물성이 우리 한지랑 비슷하고, 강도 면에서 한지가 오히려 우수했다”며 “국산화 효과는 물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천년을 가는 한지처럼 가업을 발전시키고 후대에도 전주한지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명문장수기업은 해당 업종에서 45년 이상 건실하게 운영한 기업중에서 5∼6개 기업을 매년 선정해 오고 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