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옛 트위터)가 소셜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청소년 자해 정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 SNS 내용물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자해 정보’ 삭제를 강제할 법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국민일보는 X의 자해 정보 자정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노출 빈도가 높은 ‘자해 게시물’ 5건을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모니터링했다. 이틀에 한번씩 총 3차례 자해 관련 내용이 게시된 계정을 X 본사에 신고했고, 매일 오후 1시와 5시에 조회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자해 게시물 4건은 X의 아무런 제재 없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고, 그 사이 해당 4건의 누적 조회수는 1만1527회에서 3만8982회로 3배 넘게 급증했다. 유일하게 삭제된 게시물 1건도 계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국민일보가 살펴본 5개 계정은 ‘자해 전시’ ‘패션 자해’ ‘자해계’ 등을 해시태그로 달았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가 흐르는 모습을 SNS에 노출하는 계정을 의미한다. 미국에선 Self-HarmTWiTter의 약자인 ‘shtwt’가 유사한 뜻으로 통한다. 미국 네트워크감염연구소(NCRI)는 지난해 8월 트위터에서 자해 해시태그가 1년 만에 500% 증가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실상 X가 국내외 ‘자해 영상 대유행’의 진원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X는 ‘자살 및 자해 관련 정책’을 통해 “자해 또는 자살 의도를 표현하는 계정”을 고객센터에 신고하도록 권고한다. 소개된 신고 방법은 간단하다. ‘안전한 사용 및 민감한 콘텐츠’ 항목에서 ‘신고 대상의 계정’ ‘게시물 주소’ ‘상황 서술’ 항목을 작성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 삭제까지는 요원하다. 신고자에게 처리 결과도 통보하지 않는다.
이동훈 성균관대 교수(외상심리건강연구소 소장)는 23일 “청소년 자해는 SNS를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될 수 있다”며 “심리적으로 힘들 땐 ‘자해’를 통해 표출하면 된다는 학습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선 자해 정보 삭제, 강제도 못 한다.
현행법으로 X에 올라온 자해 정보의 삭제를 강제할 마땅한 규제 방안도 없다. 유해 게시물 단속 과정에서 자해 정보는 자살 정보와 차등을 두고 관리된다. 자살 정보는 ‘자살예방법’에서 규정하는 ‘자살 유발 정보’로 분류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X에 게시물 삭제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
반면 자해 정보는 시행령 아래의 행정규칙인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서 ‘잔혹·혐오 정보’로 분류돼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다. 자살 정보와 달리 삭제를 강제할 수 없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잔혹·혐오 정보 시정요구 현황’에 따르면, X는 지난해부터 올 10월까지 위원회로부터 총 644건의 시정 요구를 받았다. 이는 같은 기간 페이스북(12건), 인스타그램(1건), 틱톡(6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규모다.
다만 ‘잔혹·혐오 정보’에는 자해 게시물 외에 시신 훼손, 살상·사고 장면 등도 포함되기 때문에 해당 건수가 ‘자해 정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정보가 과잉 유포된 점을 고려하면, 유통되는 자해 정보에 비해 차단되는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이동훈 교수는 “자극적인 자해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청소년들이 자해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며 “정부기관에서 요청한 자해 정보 삭제를 법적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모니터링 체계에서 최근 확산하는 자해 정보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X서 자해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지난해 4월 트위터 인수 합의를 발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같은 해 12월 대량 해고에 들어가 올 1월까지 전체 직원의 약 80%를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자해나 자살과 같은 유해·불법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윤리 업무를 담당한 ‘신뢰와 안전’ 부서 인력은 20명 아래로 줄었다고 한다.
국내 트위터코리아 역시 관련 업무를 맡던 직원들을 지난해 11월 4일부로 해고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트위터코리아에서 신고가 접수된 자살·자해 콘텐츠 처리를 담당하는 부서는 커뮤니케이션팀이었는데, 무더기 해고 사태를 지나면서 국내 담당 부서마저 사실상 공중 분해됐다고 한다.
X 본사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어서 사실상 자해 게시물 문제를 국내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자살 예방 단체 관계자는 “트위터에서 윤리 관련 부서가 통째로 없어진 탓에 유해 게시물 삭제 문제로 미 본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하기 어려워졌고, 바로 의사 결정을 하기도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전했다.
미국 상원은 다음달 6일 열리는 아동 보호 관련 청문회에 X의 CEO 린다 야카리노를 증인으로 출석시키기 위해 소환장을 발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SNS가 아동 정신건강에 끼치는 폐해 가능성에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합의를 한 결과였다.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의원과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은 “아이들에게 비용을 치르게 하는 빅테크의 정책적 실패를 결코 용납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