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생활 타임캡슐 ‘이재난고’ 국가과학기술자료 됐다

입력 2023-11-23 15:19 수정 2023-11-23 15:20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된 '이재난고.'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이 53년간 쓴 일기로 58책에 일반 생활과 각종 과학분야 자료가 실려 있다. 고창군 제공.

조선시대 생활 타임캡슐로 불리는 ‘이재난고’가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가 됐다.

전북 고창군은 이재 황윤석(1729~1791)의 친필 일기인 ‘이재난고(頤齋亂藁)’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부터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고 23일 밝혔다.

이재난고는 고창출신인 황윤석이 10세 때부터 눈을 감기 직전까지 53년간 ‘난고’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를 한데 엮은 것이다.

58책 500여만 자에 이르는 이 책은 과학기술사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온천, 제련법(製鍊法), 구리의 분류와 배합 비율의 변화, 광물과 광산, 식물의 명칭 연구, 의학이나 물산 등의 자료가 기록돼 있다.

이는 다산 정약용의 저술보다 100년 정도 앞서며 훨씬 정교하고 그 양도 많다고 고창군은 설명했다. 후대 서유구 등의 실학자가 대부분 외국자료를 인용했던 바와 달리 이재난고에는 인용 기록과 함께 당시 상황까지 적혀 있다.

황윤석은 성리학자이자 실학자로 수학과 천문학, 지리학, 역사학, 언어학, 기술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 가운데 산학(算學), 천문학 등은 일찍부터 주목받아 많은 연구가 진행돼 왔다.

특히 ‘윤종기(輪鐘記)’에서는 자신이 관찰한 자명종을 상세히 서술하고 기어비나 작동원리를 방대한 도표로 기록했다. 기어비는 서로 맞물리는 두 개의 기어에서 큰 기어 톱니 수를 작은 기어 톱니 수로 나눈 값이다.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홍대용의 혼천시계를 복원할 때 ‘이재난고’에 담긴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창군은 그동안 이재난고의 국가자료 등록과 함께 학술적 가치 규명·보존·활용을 위해 학술대회와 번역사업 등을 지원해 왔다. 더불어 기록화사업, 디지털 이미지 구축사업 등을 마치고 올해 문화재청에 보물 승격을 신청한 상태다.

그러나 현재 10분의 1정도만 번역 작업을 마친 상태다. 군은 앞으로 국립중앙과학관의 유물 보존관련 지원과 순회 전시 및 스토리텔링 개발 활용 등을 통해 적극 홍보해 나갈 예정이다.

심덕섭 군수는 “한 학자가 평생에 걸쳐 쓴 기록이 우리나라 과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임이 공인되게 됐다”며 “이재난고가 반드시 보물로 승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는 과기부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높고 계승할 필요가 있는 자료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등록‧보존‧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올해 이재난고 등 16건을 포함, 모두 58건이 등록돼 있다.

고창=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