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하면 떠오르는 붉은 건물이 있다. 마로니에 공원 중심에서 젊음의 활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아르코미술관’이다.
아르코미술관은 누구나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술관 임근혜 관장을 지난달 대학로에서 만났다.
미술계를 자극하는 새로운 전시를 만들다
아르코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처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에 속한다. 다른 공공미술관이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을 제도적으로 검증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아르코미술관은 미술 현장의 변화에 주목한다.
임 관장은 “전시를 기획할 때 미술사나 소장품 연구에 기반을 두지 않고 사회와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유연한 활동을 보여준다”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비전인 ‘예술 현장의 파트너’를 실천하는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과 실험적 예술 활동을 존중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관심을 쏟고 있는 이슈를 빠르게 전시 기획에 반영하다 보니 관람객들은 주제가 낯설고 무겁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임 관장은 “미술로 접해보지 않아서 낯설고 실험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는 보편적인 주제”라고 밝혔다.
임 관장은 ‘투유: 당신의 방향’ 전시에서 다룬 팬데믹 시기의 이동 제한을 예로 들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모두 일상생활의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해당 주제를 미술 작품으로는 처음 접했기 때문에 새롭다고 평가했다”면서 “색다른 주제를 빠르게 작업물로 만들어 내는 작가들을 발견해 미술관으로 데려온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매체와 기술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속도와 방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보인다. 아르코는 그 도전과 시행착오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전시 주제의 순환 … 미술관 밖 변화까지
아르코미술관의 전시 주제는 미술관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술관은 전시로 다룬 이동 제한 문제를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위한 시설 개선 사업으로 이어 나갔다. 휠체어 체험 워크숍을 진행한 뒤 미술관 진입로 경사를 개선하고 휠체어 눈높이에 맞춰 전시 관람 동선을 다시 만들었다. 이동 약자를 위한 미술관 이용 매뉴얼 제작도 잊지 않았다. 장애 예술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다음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명함에 점자를 새겨넣었다.
임 관장은 “전시 주제가 단기간 논의되지 않고 꾸준한 실천으로 연결되어 배리어 프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관람객의 지식, 이해도를 고려하여 전시를 쉽게 만드는 것만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가 아니다. 다양한 조건을 가진 관람객이 모두 환대받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르코미술관의 실천은 작가들과 타 미술관의 변화를 이끌었다.
미술관은 환경 및 생태 관련 전시에 이어서 ‘친환경 실천 계획 매뉴얼’을 제작했다. 매뉴얼에 따라 전시 기물을 지난해 대비 90% 재활용했고 전시 인쇄물을 디지털로 바꿔 종이 사용량을 60% 줄였다. 성과가 알려지자 다른 미술관들이 아르코미술관의 매뉴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자체 워크숍을 진행하여 친환경 작업 매뉴얼을 만들었다.
임 관장은 “전시 주제로 관심을 가졌다면 당연히 미술관도 변화해야 한다”며 “미술관 밖까지 변화가 이어져서 기쁘다. 아르코는 지금 이 시대 미술, 즉 동시대 미술을 만드는 미술관”이라고 덧붙였다.
아르코의 지원과 함께 성장하는 한국 미술…‘인미공’과 ‘초대전’
아르코미술관은 부족했던 전시 공간을 미술 단체와 작가에게 제공하기 위해 1974년 미술 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미술계에 대한 지원은 인사미술공간과 초대전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인사미술공간은 시각 예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실험 작가들을 대상으로 교육, 연구, 창작, 교류를 지원하는 대안공간이다. 인사미술공간의 전시, 프로그램과 연동하여 기획·운영되었던 인미공아카이브는 아르코미술관의 전시·연구 자료와 통합되면서 오늘의 아르코아카이브에 이르렀다.
아카이브의 한국 비디오 아트 초기 작품 212점, 566명의 작가 포트폴리오 등 아카이브 자료는 작가 연구, 논문으로 활발하게 활용된다. 미술계 관계자는 “아카이브의 자료는 한국 미술계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미술관은 높은 관심에 호응하여 디지털화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아르코 기획 초대전은 제도권 중심 밖 작가들의 위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현세대에게 영향과 영감을 준다. 임 관장은 “제도권 중심 밖의 작가란 중요도에 비해서 경력 단절, 지역 소외 등으로 인해 덜 알려진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11월 19일까지 진행된 기획 초대전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가 그 예시다. 1980년 10월, 노 작가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전시가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무산된 경험이 있다. 임 관장은 “노 작가는 억압과 탄압이 심했던 검열의 시기에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시대를 꿰뚫는 작업을 이어왔다. 변함없는 태도와 예술을 위해 어려움을 견뎌내는 자세는 현시대 작가들까지 공감하고 존경하는 점”이라며 “과거에 비해 포용적이고 성숙해진 현 사회도 전시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르코의 50년, 그리고 한국 미술의 새로운 미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앞두고 아르코미술관이 한국관 운영을 맡게 됐다. 임 관장은 미술관을 운영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하여 국내 미술계의 성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운영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팬데믹 시기의 시도와 변화까지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하다. 책임감에 마음이 무겁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를 부탁했다.
임 관장은 미술관이 모든 관람객에게 환대의 공간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그는 “미술과 일상이 가까워지는 편한 공간이길 바란다. 가볍게 방문하기에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획자, 연구자, 작가 등 다양한 미술 현장의 주체들에게는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느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르코미술관은 50주년 기념전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를 12월 8일부터 개최한다. 미술계 관계자들의 설문을 통해 선정된 ‘다시 보고 싶은 작가’ 9명과 신예 작가들이 팀을 이뤄 공동 작업물을 선보인다.
아르코미술관 50주년 기념전
전 시 명 :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Path of Contact)
전시기간 : 23.12.8. ~ 24.3.10
전시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1, 2전시실, 공간열림
참여작가 : 총 22명 (총 9팀 및 작고 작가 3인)
미술관은 미술관의 전시 역사를 관통하는 방향을 주목하여 역대 주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인터뷰, 대여자료 중심의 아카이브를 포함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작가 중심의 활동을 전시와 이벤트 형태로 소개한다. 전시사 연보와 출간물을 병행하여 발간하고 그간 미술관이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해온 주요 역할을 상기한다. 아울러 미술관의 50년 여정을 돌아보고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전 시 명 :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Path of Contact)
전시기간 : 23.12.8. ~ 24.3.10
전시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1, 2전시실, 공간열림
참여작가 : 총 22명 (총 9팀 및 작고 작가 3인)
미술관은 미술관의 전시 역사를 관통하는 방향을 주목하여 역대 주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인터뷰, 대여자료 중심의 아카이브를 포함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작가 중심의 활동을 전시와 이벤트 형태로 소개한다. 전시사 연보와 출간물을 병행하여 발간하고 그간 미술관이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해온 주요 역할을 상기한다. 아울러 미술관의 50년 여정을 돌아보고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김지혜 인턴기자
<말많은전시>는 따뜻한 미술관들의 이야기를 쉽게 기록합니다. 우리 주변을 꾸준히 지켜온 미술관들의 깊은 고민과 개성을 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