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금일 이어… ‘칼부림’ 뜻 두고 MZ세대 갑론을박

입력 2023-11-23 10:35 수정 2023-11-23 11:47

“금토일은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적었나요?”
“금일까지 제출하라면서요. 금일은 금요일이잖아요?”
“유선상으로 문의하라고요? 유선상씨가 누군데요?”

‘사흘’ ‘금일’ 등 단어 의미를 해석하지 못해 벌어진 촌극이 온라인을 달군 가운데 이번에는 젊은 층 사이에서 ‘칼부림’ 뜻을 두고 논쟁이 벌어져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공포감 조장” VS “네가 모르는 것”
23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지난 21일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한 칼부림 소식을 전하는 게시글에 대해 ‘흉기난동 사건에 칼부림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의 주장이 확산했다.

한 네티즌은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칼부림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는 것 같다”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닌,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도 칼부림이라고 하면 너무 공포감이 조장되는 것 같다”고 적었다.

칼부림의 뜻을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일’로 착각해 이런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단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댓글에 다른 네티즌이 “칼부림 원래 뜻이 ‘남을 해치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묻지마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난동피우는 것만이 칼부림이 아니다”고 반박하며 단어 뜻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에 공감한 다른 네티즌은 “칼부림과 묻지마 범죄를 착각한 게 아니냐”고 했다. “묻지마 범죄의 경우 따로 설명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고, 칼부림 자체는 칼을 휘둘러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이 맞는다” “본인이 뜻을 모른다 해서 단어 자체를 쓰지 말라는 것은 이기적인 일 아니냐” 등 의견도 나왔다.

반면 ‘본래 뜻이 그렇더라도 그러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쓰지 않는 게 옳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섰다. 한 네티즌은 “칼로 상해를 입히는 사건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제 와서 유독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다. “사람들은 칼부림이라고 하면 대부분 묻지마 범죄를 생각한다” “나도 칼부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치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등 의견이 이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칼부림은 ‘남을 해치려고 칼을 함부로 내저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적혀 있다.

사흘·금일·심심하다… 이어지는 '문해력 논란'
특정 단어를 해석하는 방식을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사흘간의 황금연휴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왜 3일인데 사흘이라고 쓰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 사흘을 ‘4흘’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에는 한 업체가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며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적었는데, 이에 ‘지금 상황이 심심하냐’ ‘왜 사과를 심심하게 하느냐. 나는 하나도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 밖에도 오늘을 뜻하는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로 착각한 사례나, 유선상(有線上)으로 문의 달라는 안내문을 보고 ‘유선상씨가 누구냐’고 되묻는 등 웃지 못할 사례도 적지 않다. 제자에게 ‘네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고 말했다가 “10분이란 짧은 시간으로 어떻게 제 마음을 이해하세요”라고 되레 면박을 받은 교사의 사례도 전해진다.

이처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문해력 논란이 잇따라 벌어지며 윤석열 대통령마저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나섰다.

반면 이 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그 단어는 내가 모르니 쓰지 말라’는 태도를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칼부림’ ‘금일’ ‘심심하다’ 등은 온라인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언론 기고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단어에 혹여 내가 모르는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숙고하는 신중함을 보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