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한 은행 과점체제에 균열을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연내 전환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회성 상생 금융 지원안은 연내 발표될 예정이지만, 정작 근본 문제인 은행권 과점체제 해소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전 은행권에서 차지하는 예금 비중은 74.1%에 달했다. 대출 비중(63.5%)과 자산 비중(63.4%)도 절반 이상이다. 이처럼 국내 은행 산업의 근본 문제는 5대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체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시장 나눠 먹기’로 예대금리차를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상생금융과 별개로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이지만, 과점체제 해소의 핵심 방안인 ‘신규 플레이어’ 진입은 첫 단추부터 지지부진하다. 금융 당국은 지난 7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계획을 야심 차게 발표했다. 그런데 올해가 약 한 달 여 남은 상황에서 연내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대구은행이 아직 인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제출 전에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은행법상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인가 관련 유권 해석을 받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은행은 내부통제 강화 방안 등에 초점을 맞춘 인가 신청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은행은 지난달 1662건에 달하는 불법계좌 개설을 한 사실이 적발되며 시중은행 전환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편으로는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진정한 ‘경쟁 촉진자’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당기 순이익이 적은 NH농협은행과 비교했을 때도 5분의 1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대구은행이 5대 시중은행과 어깨를 견주기 위해서는 초반 파격적인 예적금 금리 상품을 내놓는 등 조처를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몸집이 작은 대구은행이 무리한 비용 부담을 지려다가 자칫 경쟁력을 잃고 고꾸라질 가능성도 있다. 원대식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독과점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은행을 쉽게 인가해줬다가 경영이나 부실 대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경제에 도움은커녕 더 큰 어려움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은행 이후 제2·제3의 신규 플레이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금융 당국은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외에 네 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 출현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최근 인터넷은행이 주택담보대출에 몰두하고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라는 당초 취지를 달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거센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제4 인터넷은행 출현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