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목사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목사님의 눈은 늘 물기에 젖어 있었다.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염려하는 근심의 눈물이 고여 있는 듯 하였다. 일류의 죄 짐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주님께 너무 죄송하셨음일까. 목사님은 잠 못 이루는 애타는 밤이 많으셨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 깊도록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도 외로움과 아픔과 고통을 피부로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주님께서 인류의 죄 짐을 맡으셨던 그 모습을 목사님은 흡사 닮으신 듯 느껴졌다.
대학생선교회(CCC·Campus Crusade for Christ)는 1951년 세계대전 이후 혼돈을 겪고 있던 미국 대학가에 미래의 리더들을 키우기 위해 미국에서 발족하였다. 이 선교회는 미국인 빌 브라이트 박사님이 창립했다.
1957년 빌 브라이트 박사님은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 한국에도 CCC를 창립했다. 캠퍼스의 복음화를 위해 젊은 학생들을 믿음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선교회의 창립 목적이었다. 그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남북으로 38선이 그어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이 나뉘어 휴전 상태로 있다.
그 시절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념의 갈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할 때였다. 시대의 위중함을 염려하신 김준곤 목사님은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든든히 세우시려는 애국심으로 기독 청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심으려고 노력하셨다. 우리 강토를 사랑하고 민족을 깨우는 일, 오직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원대한 목표를 들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사명감에 젖어 계셨다.
1960년대 초여름이었다. 금산 초등학교에 수십 명의 청년이 의약품을 가득 싣고 낙도 거금도에 도착했다. 내가 태어난 거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 큰 섬이다. 때마침 내가 다니던 대흥교회 여름 하기학교가 시작되었으나 학생을 지도할 교사가 없어 고심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전도사님께 서울에서 내려온 언니, 오빠들에게 도움을 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처음 만난 언니, 오빠들에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밤잠을 설치며 궁리했다. 스펙이 화려한 언니 오빠들은 어떤 사명을 들고 대한민국 끝자락 거금도까지 찾아왔을까. 밤새도록 혼자 상상을 했다. ‘어쩌면 저들은 흰옷 입은 천사들일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른 아침 학교에 찾아갔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우리 교회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뜻밖에도 그들은 까무잡잡한 섬 소녀인 나를 반겨주었다.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던 언니 오빠들이 먼저 나서며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주일 학생은 몇 명이나 되느냐? 호기심 가득한 모습이었다. 전도사님을 만나고 그들은 흔쾌히 하기학교에 함께 해주겠다는 확답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소녀였던 내가 어떻게 그리 담대했을까, 나는 그런 담력이 믿음의 작은 씨앗인 것도 몰랐다.
내가 신앙생활 시작한 곳은 거금도 대흥리 대흥장로교회다. 나는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 우리 교회에는 순천에 있는 순광교회 담임이시며 성경고등학교 설립자이신 김화일 목사님께서 전도사님을 파송하셨다. 전도사님은 열정이 얼마나 많으신지 핍박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종이였다. 특별히 나를 위한 중보기도를 해주시는 귀한 종이였다.
여름 하기 학교에 참여한 청년 오빠 언니들은 CCC 활동을 하는 크리스천들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래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이 맞아”라며 스스로 확신에 젖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 처음 만난 오빠들이 지금의 남서울반포교회를 개척하셨고 20년 후 다시 일원동에 밀알학교를 설립하셨다. 올해가 밀알학교 설립 28주년이며 그 학교 안에 남서울은혜교회가 존재한다. 밀알학교는 장애우를 교육시키며 섬기는것을 원칙으로 설립되었다.
김준곤 목사님이 미국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은 주님 곁으로 먼저 가신 새순교회 설립자 윤남중 목사님이 CCC 대표직을 맡아 사역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들이 내 뇌리에 스친다. 온누리교회 개척자 하용조 목사님, 미국으로 떠나신 강용운 간사님과 기아대책 정정섭 장로님, 두상달 장로님, 사랑하는 최혜산 언니 등 나와 인연이 닿았던 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통해 내 믿음도 성장했다.
최혜산 언니와 나는 주 안에서 의자매가 되었다. 긴 세월 친구가 된 신정숙과 정정숙 등 여러 언니 오빠들과 펜팔을 시작했다. 내게 좋은 책을 많이 보내주던 친구 신정숙은 그 당시 이화여대 약학대학 1학년생이었다. 김준곤 목사님의 육신이 허약해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구기동에 목사님을 뵈러 갔었다. 국애 딸은 내가 중매해야 한다면서 사진 한 장을 달라 하셨다. 우리 국애와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스토리가 있다고 하시며 친구가 알아듣지 못하는 천국 방언으로 말씀하셨다. 심지가 깊은 친구는 그 말씀의 의미를 캐묻지도 않았다.
나는 친구와 결혼식 전날 밤을 함께 지새우며 지난날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가난한 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진실한 친구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 조언하고 격려하며 예수의 피로 나눈 진한 우정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2편에서 계속)
*아래는 인생을 기찻길에 비유해 Patsy Cline 부른 곡입니다. 가사가 너무 은혜로워서 여기에 첨부합니다.
Life is like a mountain railroad
인생이란 산 위로 달리는 철도와 같으니
With an engineer that’s brave
용감한 기관사 한 분 두고
We must make the run successful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요람에서 무덤에까지니
Watch the curves, the hills, and tunnels
꾸부러진 길들, 조심하며 언덕이며, 터널들도 역시
Never falter, never fail
망설이지 말고, 낙심도 결코 말고
Keep your hand upon the throttle
손으로는 조절판을 굳게 쥐어 잡되
And your eyes upon the rail
자네의 눈은 늘 철도를 주시하면
Blessed Savior, thou will guide us
축복의 구세주, 우리를 안내하리니
Till we reach that blissful shore
우리가 그 축복으로 가득 찬 해변 안에 도달할 때까지
Where the angels wait to join us
그곳에 천사들이 우리를 마중하러 기다릴 테니
In that place forevermore
그곳 영원한 나라에서
Blessed Savior, thou will guide us
축복의 구세주, 우리를 안내하리니
Till we reach that blissful shore
우리가 그 축복으로 가득 찬 해변 안에 도달할 때까지
Where the angels wait to join us
그곳에 천사들이 우리를 마중하러 기다릴 테니
In that place forevermore
그곳 영원한 나라에서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