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종칠금도 아니고’…2년 사이 5번 피의자 놓친 광주경찰 체면 구겼다

입력 2023-11-19 15:38


‘잡았다 놓치고 잡았다 놓치고 잡았다 놓치고...’

광주 경찰이 체면을 구기고 있다. 범죄 용의자를 붙잡았다가 감시 소홀 등으로 놓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광주에서 올해 들어 3번째 압송 도중 피의자가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의 부실한 관리에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피의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잠시 수갑을 풀어준 것이 대부분 원인으로 파악돼 압송·호정 지침을 보다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광주 동부경찰서는 19일 절도혐의로 붙잡혔지만 잠시 후 경찰을 때리고 도망간 혐의(절도·도주·공무집행방해)로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A(19)씨를 입건, 조사 중이다.

A씨는 전날 오후 6시쯤 동부경찰서 앞마당에서 압송되던 중 자신을 데려온 지역 지구대원 B경사의 얼굴을 갑자기 때린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10분 전쯤 충장로 한 생활용품 판매장에서 2만8000원 상당의 이동식 디스크(USB) 등을 훔치다 업주에게 적발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지구대 경찰관이 A씨를 순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달아난 A씨는 도주 3시간 15분 만인 오후 9시 20분쯤 동구 한 대학교 기숙사 건물에서 긴급체포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9월 지역 한 대학교 어학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도주는 경찰의 허술했던 피의자 관리가 화근이었다. A씨에게는 수갑 등 최소한의 도주 방지책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

검거 당시 경찰은 수갑을 채웠다가 도주 우려가 높지 않을 것으로 예단하고 경찰차 안에서 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서 도착 직후 자신을 압송하려는 지구대원을 때리고 순식간에 달아날 수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절도현장을 다시 찾아 지문을 채취하는 등 소동을 벌인 끝에 한국어 연수 중인 유학생 A씨의 기숙사 등을 찾아 헤맸다. 경찰은 결국 기숙사에 숨어 있던 A씨를 검거했지만 부실한 피의자 관리에 대한 비난은 비껴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만일 A씨가 불법 체류자였다면 명확하지 않은 주거지로 인해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될 공산이 컸다.

광주지역 피의자 도주극은 이번 사건을 포함해 2년 사이 5건에 이른다. 올해만 벌써 3번째다.

지난 9월 광주 북구 한 주택가에서는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입건된 20대 C씨가 주변 지구대로 임의동행하던 과정에서 경찰의 감시가 소홀한 틈에 달아나 2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경찰의 느슨한 피의자 관리에 따른 도주는 잇단 탈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광산구 월곡지구대에서 도박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베트남인 10명이 지구대 창문을 통해 집단으로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 35시간 만에 모두 검거됐다.

지구대 회의실에서 조사를 기다리던 10명이 20~30㎝ 남짓 벌어진 창문 틈으로 하나둘씩 달아나는 동안 경찰은 팔짱만 낀 채 방심했다.

강제추방 등이 두려운 이들은 연락이 닿은 경찰과 지인의 설득 끝에 7명이 자수하고 나머지 3명은 거주지 등에서 체포됐지만 경찰의 부실한 피의자 관리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여론이다.

앞서 지난해 7월 광산구 하남파출소에서는 데이트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된 30대 남성이 조사를 받던 중 휴식시간을 틈타 파출소 담을 넘어 달아났다가 7시간 만에 잡혔다.

이보다 6개월 앞선 1월에는 광주 북부 경찰이 수갑을 채운 피의자를 병원에서 놓치기도 했다.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속임수에 경찰이 방심하고 수갑을 풀어준 게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경찰은 폭행·도주·극단적 선택 시도 등의 우려가 보이는 피의자 위주로 제한적으로 채우도록 한 관련 규정을 근거로 느슨하게 피의자 압송 등을 하는 바람에 도주를 사실상 방치한 게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경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 등은 “여러 곳의 경찰서에서 다발적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로 볼 때 경찰관 개인의 업무 태만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 압송 과정의 시스템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점검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행 범죄 수사규칙 제125조 4항에 경찰관은 피의자가 도주, 자살 또는 폭행 등을 할 염려가 있을 때는 수갑·포승 등 경찰 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구속된 유치인을 다루는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제22조에도 수갑의 사용 범위를 출감·도주·극단적 선택·폭행 우려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수갑사용이 인권을 함부로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한을 받는 때가 적잖다”며 “피의자 도주에 따른 추가 범행과 시민 불안을 막는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규정을 다듬을 필요가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