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부인’의 103년 전 추수감사 찬양 들어보니

입력 2023-11-19 14:46
홍승표 목사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1920년 기독신보에 실린 '전주 이부인'이 쓴 '추수감사의 찬송' 전문. 홍 목사 페이스북 캡처

“밭 갈고 씨를 뿌려 힘쓰고 애쓰나 잘되게 하실 이는 하나님뿐일세. 동설(冬雪)로 밭을 덮고 춘풍우(春風雨) 보내며 여름 볕 장맛비로 곡식 일구시네(1절) 하나님 아버지여 감사하옵니다 오곡백과를 주사 잘 먹게 하시니. 은혜를 갚으려고 연보를 드리며 달라진 우리 맘을 같이 바칩니다(2절) 천하 만민들아 대주재 찬송해 그 영화로우신 이름은 여호와시로다(후렴)”

1920년 11월 10일 ‘기독신보’에 실린 ‘전주 이부인’이 작사한 ‘秋收感謝日讚頌(추수감사일 찬송)’이라는 제목의 찬송시다. 신문은 이 시에 곡을 붙인 이가 ‘차호에’라고 썼다. 기독신보는 1915년 미국장로교선교회와 감리교선교회가 연합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초교파 연합신문으로 1937년 폐간할 때까지 선교 초기 우리나라 교계의 소식을 전했다.

이 찬송을 발굴한 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이사 홍승표 아펜젤러인우교회 목사다. 연세대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홍 목사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찬송시를 소개하면서 “추수감사절이 미국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땡스기빙데이(Thankgiving Day)’로 불리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이 1년 동안 기른 작물을 가을에 추수한 뒤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던 걸 기념하는 날로 미국 최대 명절이다.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가족끼리 모여 파티를 열고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전통이 있다. 유명한 할인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도 추수감사절을 전후해 진행된다.

홍 목사는 1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청교도와 칠면조 이야기로 점철된 미국의 낯선 축일로만 여겨졌던 추수감사절이 ‘전주 이부인’이라는 이름 모를 여성의 찬송시 운율을 따라 우리 숨결이 깃든 잔칫날로 새롭게 보게 됐다”면서 “그녀의 노랫말에는 한반도의 삶터를 향한 애정과 농촌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고 농부의 겸허함에 하늘과 땅에 대한 굳은 믿음이 단순한 가사로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이 인다”고 설명했다.

홍 목사는 “이 찬송시를 읽으면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라는 시편 127편 1절의 말씀을 묵상했다”면서 “신앙 선배들도 오래도록 지켜온 추수감사절을 맞아 인내하고 기다리며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그분께 감사하고 또 감사밖에 할 게 없다는 걸 함께 생각해 보자”고 권했다.

한편 홍 목사 페이스북 댓글에는 이 찬양시가 찬송가 591장 ‘저 밭에 농부 나가’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달렸다. 김종남 수표교교회 장로는 “찬송가 591장 가사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면서 “가사와 리듬이 딱 맞는다”고 했다.

실제 아펜젤러인우교회 교인들은 19일 예배 때 ‘전주 이부인’의 찬양시을 591장 곡에 맞춰 함께 부르며 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