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을 “유럽 국가에 준하는 시대의 심장”으로 본 신앙인은 누구?

입력 2023-11-19 12:51 수정 2023-11-20 09:57
30대이던 김교신 선생의 모습. 국민일보DB

일제강점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향후 조선이 유럽 국가들에 비견되는 ‘시대의 심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학자가 있었다. ‘무교회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진 김교신 선생이다. 지리학자이자 애국자로서 김교신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8회 김교신선생기념학술대회에서 ‘조선지리소고와 김교신의 세계사적 비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반 교수는 “김 선생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지리학에 관심을 쏟은 것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반도 정체론’을 극복하고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며 ‘조선지리소고’(1934)에서 김 선생이 조선의 면적과 인구, 위치 등을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한 내용을 소개했다.

당시 조선은 강국들에 둘러싸인 ‘반도 국가’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교신은 이런 통상의 인식을 거부했다. 반 교수는 “김교신에게 조선 반도는 인류 문명이 싹튼 온대 중 전형적인 북반구 온대지역에 있는 복되고 상서로운 땅이었다”며 “김교신은 조선을 ‘극동의 중심’으로 서술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선생은 반도의 지정학적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바로 반도로서 한 시대의 심장 역할을 했던 사례를 들었다. 그리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이 그가 예로 든 반도 국가들이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8회 김교신선생기념학술대회에서 ‘조선지리소고와 김교신의 세계사적 비전’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반 교수는 “조선 반도의 형상이 토끼를 닮았다고 주입하던 식민지 교육과 반대로 김교신은 조선 반도의 형상이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반도를 합쳐서 된 호랑이 모양이라고 주장한다”며 “이는 김교신이 조선 반도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서 조선 백성을 일깨우기 위한 애정에서 비롯된 발상의 전환”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돼 백성들을 위축시키고 있는 그릇된 사실들을 바로 잡으면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드러내 두려워하고 있는 조선 백성들을 위로하고자 한 노력”으로 평가했다.

김 선생은 ‘기독교의 전파가 조선 백성을 깨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반 교수는 “김교신의 눈에는 조선 반도에 새로운 문명으로서 기독교가 전파돼 조선 백성을 깨운 후 다시 전 세계로 전파되는 그림이 보였을 것”이라며 “그는 여러 고난과 수치를 당하면서 교만이 뿌리째 뽑혀 맑은 마음을 소유한 조선 백성이 전 세계에 루터가 개혁한 온전한 기독교를 전하는 것을 꿈꿨다”고 설명했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양현혜(오른쪽) 이화여대 교수에게 김교신연구상을 수여하고 있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이날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상익 교수)는 단체 설립에 공헌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이밖에 제1회 김교신학술상 수상자로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를, 제1회 김교신연구상 수상자로 김미정씨(이화여대 박사과정)를 선정해 상장과 상금을 수여했다.

양 교수는 “신앙과 삶과 역사를 일치시킨 김교신 선생님의 믿은바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신 성육신적 삶은 나이가 들수록 새삼 그 어려움을 절감할 수 있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며 “스승이 없고 어른이 없는 오늘날 무릎 꿇고 따를 수 있는 스승을 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