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경영자’를 자처하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180도 바뀐 행보를 하고 있다. 17년 만에 수염을 말끔히 밀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기업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김 전 의장은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수사 등의 악재를 겪으면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계열사에 책임을 엄격하게 물리겠다는 스탠스는 과거에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카카오 한 관계자는 “앞으로 문제 있는 계열사는 카카오 공동체에서 정말 배제될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가 마비됐을 때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수식이 붙었다. 당시 김 전 의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경영 복귀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김 전 의장은 같은 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전문 경영인이 저보다 훨씬 더 역량을 나타낼 것”이라며 “제가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지난 7월 카카오 노동조합 설립 이후 첫 집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노조는 고용 불안 해소와 경영 실패에 대한 김 전 의장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카카오는 일부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노조는 그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난달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SM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고, 수사의 칼날이 김 전 의장을 향하자 카카오는 쇄신안 마련에 속도를 높였다. 김 전 의장은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 “카카오 공동체는 더 이상 스스로를 스타트업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등의 강한 발언을 이어갔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카카오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는 다른 빅테크와의 차별점이었지만,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최근 외부 감시 기구 ‘준법과 신뢰 위원회’(이하 준법위)에 주요 권한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준법위는 카카오 계열사의 법 위반 리스크가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 요구권, 직접 조사 실시권, 의사 결정 조직에 대한 긴급 중단 요구권을 발동할 수 있다. 준법위는 위원장인 김소영 전 대법관을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됐다. 준법위는 다음 주 첫 회의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장은 “준법위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계열사의 행동이나 사업에 대해서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 전 의장은 홍은택 카카오 대표이사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최근 월요일마다 공동체 경영회의도 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 단체들의 비공개 간담회가 열린 지난 13일에는 카카오모빌리티 본사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독과점 논란에 관해 저렴한 가맹수수료 체계 마련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