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공짜 호화여행’ 비판에 첫 윤리강령 채택

입력 2023-11-14 07:04 수정 2023-11-14 08:13

미국 연방 대법원이 자체 윤리 강령을 처음 채택했다. 공짜 호화 여행 등 일부 대법관들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대중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내놓은 조치다.

대법원은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최근 수년간 대법관들은 다른 법관과 달리 어떤 윤리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오해를 받아 왔다”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윤리 강령을 명문화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법원은 기타 사법부와 달리 구속력 있는 별도의 윤리 강령 없이 운영됐다.

강령에는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금전적 영향으로부터의 독립 유지 등 행동 규칙이 명시됐다. 가족 구성원에게 금전적 이익을 줄 수 있는 사건 참여 제한, 선물 수락 제한이나 요청 금지와 관련한 사법회의 규정 준수 등 다른 사법부가 지켜왔던 기본적인 규칙이 담겼다.

9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 대법관은 본인이 사망하거나 사퇴하기 전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종신직이다. 대법관들 자신도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며 다른 판사들이 적용받는 윤리 강령을 자발적으로 준수해 왔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일부 대법관들의 ‘일탈’이 알려지면서 대법관 규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미국변호사협회는 지난해 “대법관을 위한 명확하고 구속력 있는 윤리강령이 없어서 대법원의 정당성이 위태로워진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일부 대법관들이 지인 후원을 받아 고가의 여행을 공짜로 즐기고도 이를 숨긴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에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텍사스 부동산 사업가인 할런 크로로부터 자가용 비행기 등을 이용한 호화 여행과 고가의 스포츠 경기 티켓 등 수십 차례 편의를 받고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크로는 토마스 대법관과 그의 친척의 부동산 여러 채를 사들이고, 조카 사립학교 수업료도 냈다.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도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와 2008년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난 사실이 밝혀져 구설에 올랐다. 이들 두 대법관은 모두 당시 법에 따라 개인적인 여행을 보고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강령은 그러나 여전히 구속력이 없다. 강령은 “허용 범위를 제외하고 함께 거주하는 가족 구성원이 선물을 요구하거나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자의적 내용이 많다. 강령은 “대법관은 어떤 행동이 대중에 부적절해 보일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기피 결정 등도 스스로 내려야 한다고 명시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대법관들이 오랫동안 미뤄온 조치이지만, 윤리 강령은 위반 가능성을 조사하고 규칙을 집행할 메커니즘이 없는 한 구속력이 없다”며 “명예 제도는 대법관들에게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