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 입에선 뜻밖의 한 마디가 나왔다.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선 채였지만 “절실하다”고 했다. 그의 지도자 경력에 붙은 무관의 꼬리표가 그만큼 선명했다.
내야수 염경엽은 ‘A급’ 야구선수가 아니었다. 수비·주력 외에 크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서 1군 통산 896경기에 나섰지만 1449타수에 그쳤고 통산 타율은 2할이 채 안 됐다.
기다림은 계속됐다. 은퇴 후엔 현대 프런트에서 궂은일을 맡았다. 지도자 인생도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2007년 고대하던 코치직을 처음 맡았으나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2010년 LG로 적을 옮겨서도 자리를 못 잡았다.
감독 데뷔 후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지만 우승이란 숙제는 못 풀었다. 넥센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에서 보낸 6시즌 중 5번 가을야구를 경험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은 1번뿐이었다.
LG 사령탑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한 뒤에도 시선은 엇갈렸다. 리그 최강 타선을 보유하고도 작전 야구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LG가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기에 더 매서운 질타가 쏟아졌다.
염 감독은 결과로 증명했다. 시즌 초반 주전 마무리 고우석과 4선발 이민호의 부상 악재에도 상위권을 지켰고 5월 1위에 등극한 뒤 줄곧 페넌트레이스를 주도했다. 한국시리즈 들어서도 기세는 이어졌다. 1점 차로 1차전을 내줬으나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내리 4연승, 숙원을 풀었다.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는 이번 우승으로 29년간 이어져 온 LG의 감독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4년 이래 김성근 김재박 양상문 류중일 등 11명의 감독이 V3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LG를 떠났다.
경기 종료 후 상기된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나타난 염 감독은 “LG 감독을 맡고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시리즈 향배를 가른 승부처론 2차전 박동원의 홈런을 꼽았다. “마음 변치 않고 오랫동안 응원해준 팬들 덕에 절실함이 생겼다”고도 덧붙였다.
송경모 이누리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