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인적분할’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내 사업부를 분리해 새로운 법인으로 만드는 기업분할 방식을 뜻한다. 신설 법인의 지분은 기존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다.
기업들은 유망한 사업부를 몸집 가벼운 새 회사로 독립시켜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신설 법인의 외부 고객 유치를 통한 수익 확대도 기대한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기업들의 인적분할을 고금리 기조 속 ‘돈줄’ 확보를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자회사)는 지난 10일 이사회에서 원유 저장탱크 사업부를 따로 떼어내 신설 법인 ‘SK탱크터미널(가칭)’을 설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신설 법인은 내년 1월 1일 출범한다. 분할 대상 사업부는 원유 및 석유화학제품을 보관하고, 출하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의사결정 효율성 제고’ ‘신규 사업 기회 확보’를 신설 법인의 목적으로 규정했다. SK 관계자는 “조직이 커지면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고 느려진다. 에너지 시설 운영에 전문성이 있는 조직이 중요한 판단 및 의사결정을 자체적으로 함으로써 친환경 전환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탱크터미널 사업부는 그동안 SK에너지에서 취급하는 원유만을 맡아 처리했다. 앞으로 독자적인 운영권을 확보하면 저장탱크, 부두 등 보유 중인 시설을 외부에 빌려줌으로써 추가 수익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원유뿐 아니라 지속가능항공유를 비롯한 저탄소 원료‧제품을 사업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SK디앤디도 지난 9월 이사회를 열고 한 지붕 아래 있던 부동산‧에너지 사업의 인적분할을 결정했다. ‘정체성 및 전문성 확립’을 강조하면서다. 회사 측은 “기존엔 각 사업 부문에서 발생한 이익을 명확히 분리해 분배하진 않았다”며 “이제 각사는 번 돈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투자, 고용 등에 효율적으로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TX 역시 지난 3월 종합상사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해운 부문을 육성하겠다며 인적분할 결정을 내렸다. STX그린로지스는 지난 9월 STX 분할 기일에 탄생한 신설 해운 회사다. 주로 STX 물동량만 처리하던 사업부 시절과 달리 현재는 외부 고객사 주문 처리량이 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재무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인적분할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돈을 잘 벌거나, 미래가 유망한 사업부를 쪼개서 떼어놓으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투자를 유치할 때 더 많은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디앤디는 인적분할 결의를 외부에 알리며 “부동산과 에너지 사업이 각각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TX도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를 인적분할의 목적으로 거론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