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등포 건물주 살해, 배경에 주차장 부지 소송전?

입력 2023-11-13 15:43 수정 2023-11-13 16:23

평소 자신을 무시해왔다는 이유로 80대 건물주를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주차관리인이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범인의 도주 행적이 담긴 CCTV를 지운 사건 현장 인근 모텔 주인도 함께 긴급체포했다. 이 모텔 주인은 피해자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경찰은 공범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30대 남성 김모씨를 전날 오후 9시32분쯤 강릉 KTX 역사 앞에서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전날 오전 10시쯤 서울 영등포구 한 건물 옥상에서 80대 건물주 A씨의 목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건물 6층에 있는 A씨 사무실 앞에서 흉기를 들고 기다리다가 출근하던 A씨를 옥상으로 데리고 가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옆 건물 모텔로 도주해 4시간 가량 은신했다. 이어 오후 5시30분쯤 용산역으로 이동해 강릉행 KTX에 탑승했다.

경찰은 오후 1시10분쯤 “A씨가 엎드린 채 숨져 있다”는 건물관리인 B씨의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 혈흔과 인근 CCTV 등을 확인해 김씨 도주 경로를 파악, 경기남부경찰청·강원경찰청 등과 공조해 강릉 KTX 역사 앞에서 김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평소 자신을 무시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도주해 은신해 있던 모텔 주인 40대 남성 조모씨도 증거인멸 혐의로 같은 날 긴급체포했다. 조씨는 김씨 도주 경로를 비추는 CCTV 영상 등을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조씨는 A씨가 소유한 주차장 부지를 보증금 500만원, 월 150만원에 임차해 운영하며 김씨에게 2020년 4월부터 주차 관리 등을 맡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조씨가 단순 증거인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피해자 A씨는 조씨와 주차장 부지 사용권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A씨는 지난 9월 11일 조씨를 상대로 부동산 인도 등 소송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의 갈등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들어 조씨가 월 150만원인 주차장 부지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졌다고 한다. 주변인들 말에 따르면 현재까지 밀린 월세만 1000만원 가까이다. 숨진 A씨를 처음 발견해 신고했던 B씨는 “최근에 주차장 월세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A씨가 쫓아내려고 소송을 걸었다”며 “A씨가 왜 임대료 제대로 내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았고, 조씨도 이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증거인멸 혐의 이외의 구체적 진술을 함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