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카페 등에서 시행될 예정이던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이 사실상 철회됐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동으로 수년간 종이 빨대를 개발·생산해온 제조사들은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체 측에선 “정부에 뒤통수를 맞았다”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9일 종이 빨대 제조사 ‘누리다온’ 대표 한모씨와 영남지역 다른 제조업체 대표 A씨를 인터뷰했다.
환경부는 오는 23일 종료가 예고됐던 식품접객업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금지 계도기간을 지난 7일 무기한 연장했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계도기간이 끝나고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규제가 시작될 전망이었다.
정책 변경은 종이 빨대 제조사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A씨가 운영하는 공장은 종이 빨대 400만개 발주가 취소되고 반품 요구가 빗발쳤다. 공장에 쌓여 있는 종이 빨대 2000만개 재고를 처리할 판로도 잃었다.
한씨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환경부 발표 이후 누리다온과 거래하던 개인사업자들은 물론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까지 일제히 발주를 중단했다. 현재 재고 3000만개가 남아 있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2020년 12월 ‘생활폐기물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2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듬해에는 식당 내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공포했다. 현 정부 역시 ‘일회용품 사용 감량 지속 확대’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탈플라스틱 추세 속에서 종이 빨대는 친환경적 대안으로 여겨져 왔다.
2019년 사업을 시작한 A씨는 같은 해 조달청 주관 ‘혁신시제품 국회특별전시회’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는 “그때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정말 좋은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종이 빨대 제조업은 적자가 이어졌으나 B씨는 향후 정부 정책에 발맞춰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같은 해 한씨는 기술보증기금에서 ‘권장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친환경 관련 창업자들에게 더 쉽게 대출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약 1억8000만원을 대출받아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종이 빨대 시장은 정부 정책이 변할 때마다 요동쳤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시행 3주를 앞두고 1년간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종이 빨대 수요가 급감하고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한씨와 A씨는 그래도 계도기간이 끝나면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보고 ‘힘들어도 버텨보자’며 공장 운영을 지속했다.
예정된 계도기간 종료를 약 두 달 앞둔 지난달 한씨를 비롯한 종이 빨대 제조사 4곳의 대표는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를 찾기도 했다. 플라스틱 빨대 규제가 예정대로 시행되는지 확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한씨는 “(그 자리에서) 환경부로부터 계획대로 규제가 시행될 것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한씨는 계도기간이 종료되면 주문이 늘 것으로 예상해 평소보다 생산량을 늘렸다. 10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00만개를 생산해 총 3000만개의 재고를 확보했다. 그는 “환경부 발표가 나기 전까지 회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계도기간 종료만 기다리고 있었다”며 “추가 야간작업 계획까지 마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가량 앞둔 지난 7일 환경부는 갑작스레 플라스틱 빨대 금지 계도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했다.
한씨와 A씨는 이런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한씨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의 환경부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항의했다. 그는 “환경부 공무원들은 미안하다면서 ‘종이 빨대 제조사들의 이런 내용(상황)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씨와 A씨는 모두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한씨는 지금까지 15억원을 투자하고 8억원 상당의 기계를 들여왔으나 무용지물이 됐다. 수년간 연구해온 친환경 종이 빨대 기술도 마찬가지다.
남은 건 적자를 보면서까지 운영해오던 회사의 빚이다. A씨 회사에도 법인 명의 부채 15억원이 남았다. A씨는 “플라스틱을 안 쓴다는 정부 정책 하나 믿고 여태까지 버텨왔다”며 “지금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임소윤 인턴기자, 이서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