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청년을 위한 자산 형성 정책 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상품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고령 인구 비율이 14%를 초과해 ‘고령 사회’가 된 지 8년 만이다. 한국은 2000년 고령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가 됐는데 17년 만에 고령 사회, 8년 만에 초고령 사회가 됐다. 이는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다.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가 되는 데 영국은 50년, 미국은 15년, 일본은 10년이 걸렸다.
청년 자산 형성을 돕는 정책 상품은 다양하다. 금융 당국은 2022년 상반기 ‘청년희망적금’을, 올해 상반기에는 ‘청년도약계좌’를 내놓는 등 청년층 자산 형성에만 정책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청년을 위한 자산 형성 사업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청년내일저축계좌’, 고용노동부의 ‘내일채움공제’가 있다.
그러나 청년 외 연령층의 자산 형성을 돕는 상품은 미비하다. 나이에 따른 가입 제한이 없는 자산 형성 사업은 ISA 계좌와 개인 퇴직연금(IRP)뿐이다. ISA 계좌는 5년 뒤 만기 자금을 IRP로 옮기면 10%(최대 300만원)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미사용 잔액을 전환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없다.
한국은 자산을 장기적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돕는 상품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8~29세 청년 빚 중 학자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30~34세의 경우 집을 사거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등 주거비 마련을 위한 부채가 대부분이다. 또 2018년 조사에서는 남성의 30.5%, 여성의 13%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자산 부족’을 꼽았다.
선진국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부모는 자녀가 0~6세일 때 ‘아동발달계좌’를 만들어 6000~1만8000달러를 넣으면 정부가 같은 금액을 넣어 불려준다. 자녀가 7세가 되면 아동발달계좌는 ‘대학교육계좌’로 전환해 등록금 마련 용도로 쓸 수 있다. 자녀가 30세가 됐을 때 대학교육계좌에 잔액이 남아 있다면 ‘중앙적립기금’으로 또 바꿔 주택 구매 자금이나 병원비, 은퇴 후 연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영국도 만기가 도래한 아동발달계좌를 성인 자산 형성 지원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박준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소득을 전 생애에 걸쳐 안정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면서 “싱가포르나 영국 사례를 바탕으로 장기 자산 축적 체계를 구축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