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이 땅에 온 탈북민 여러분, 만나서 참 반갑습니다. 70년 분단의 비극을 담은 곡 ‘굳세어라 금순아’를 연주하겠습니다.”
탈북민 출신 아코디언 연주자 지나정씨가 ‘헝가리 무곡’을 연주한 뒤 이렇게 말하자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적잖은 관객들이 정씨의 연주에 맞춰 손뼉을 치며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2곡을 마친 그가 앙코르곡으로 ‘반갑습니다’를 연주하자 이전보다 더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강남엘림문화원(이사장 장기호 목사)과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한정협·이사장 장기호 목사)가 10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연 ‘제5회 하나로 음악제’ 현장 모습이다. 탈북민 130여명이 참석한 이날 음악제에는 정씨뿐 아니라 소프라노 김소라와 테너 김은교 등 성악가가 무대에 올라 ‘주의 은혜라’ ‘그리운 금강산’ 등 찬송과 가곡을 불렀다. 군부대와 교도소 등에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는 오카리나 합창단 ‘더 블레싱’과 여성 중창단 ‘블레싱어스 2’는 각각 가스펠송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북한 노래 ‘사향가’를 선보였다. 아직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탈북민을 배려한 선곡이다.
올해로 탈북한 지 6년차라는 최용석(59)씨는 “아코디언 공연을 듣다 보니 눈물, 콧물이 다 나왔다”며 “항시 듣던 곡들이라 더 반가웠다”고 말했다. 탈북 5년차 직장인 A씨는 “아코디언 연주곡과 테너가 열창한 ‘축배의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돈 주고도 보기 힘든 공연이라 생각한다. 참 귀한 곡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음악제 개막식에선 유종하 전 외교부장관이 격려사를 전했다. 유 전 장관은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건 이들 국가가 사람 간 교류를 막았기 때문”이라며 “교류는 인간의 본성이다. 북한도 이 본성에 맞지 않는 체제를 고수하기에 곧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북쪽에서 온 여러분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 용단을 내린 지혜로운 사람”이라며 “조만간 남북 교류가 열릴 때 여러분이 한반도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선구자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격려했다.
이날 행사는 새문안교회 소망교회 사랑의교회 광림교회 강남엘림교회와 탈북민 교회인 뉴코리아교회가 협력했다. 장기호 한정협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음악제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열리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탈북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이런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