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제조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손해배상 소송 중 대법원 결론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향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모씨가 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제조사인 한빛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를 기각했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김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원심의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제조물 책임에서의 인과관계 추정, 비특이성 질환의 인과관계 증명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김씨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매해 겨울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살균제 사용도중 기침 등 증상이 발생해 2010년 5월부터 병원치료를 받았고, 2013년 5월 간질성 폐 질환 등의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조사 결과 김씨의 폐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충분하다며 2014년 3월 3등급 판정을 내렸다. 3등급은 가습기살균제 노출 피해자 중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으나 특징적인 병의 양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 부여되는 등급이다.
김씨는 3등급 판정을 받아 최초 1,2등급 피해자에게만 지원했던 질병관리본부 지원금을 받지 못했었다. 이에 김씨는 2015년 2월 옥시와 한빛화학을 상대로 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김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수원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2019년 9월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이 사건 가습기 살균제에는 설계상 및 표시상의 결함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에 하자가 있었다는 것을 추단할 수 있고 원고가 정상적인 용법으로 사용했는데도 신체에 손상을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김씨가 2018년부터 특별구제급여 지원 대상자(3·4단계)로 인정돼 월 97만원을 받는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500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번 판결은 제조·판매업자의 민사 배상책임을 대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결과로 향후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판결 후 기자회견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는 분들이라면 손해배상 책임을, 구제받을 수 있는 그런 확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당사는 이번 재판에서 당사의 입장을 성실히 밝혀 왔으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겸허히 수용한다”고 말했다. 김씨 외 다른 3등급 피해자에 대해서는 별도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이날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피해 판정 지연 부분에 대해 피해자들 염려가 많은데 신속하게 하겠다”며 “전체적으로 7800명 정도가 신청자인데 올해 말까지 한 6800명 정도는 피해 판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폐암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로 인정해서 기업에 추가 부담을 하도록 했다”며 “청문회 때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부분은 해결하고 싶다고 의지를 말씀드렸기 때문에 다각적으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재현 문수정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