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전직 서울대 A교수가 4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A교수는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인권을 회복하는 법적 구제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6일 확정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9년 2월 대학원생 B씨가 학교에 대자보를 게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B씨는 당시 대자보를 통해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에서 일어난 정의롭지 못한 일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서 “이 교수가 스페인에서 열리는 학회에 동행할 것을 요구했고, 현지 호텔 바에서 다리에 있는 화상 흉터를 보고 싶다며 스커트를 올리고 다리를 만졌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5~2017년 외국 학회에 동행하던 중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사에 나선 서울대 인권센터가 ‘신체접촉 사실이 인정된다’며 A교수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리라고 대학에 권고했지만, B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건을 공론화했다.
이 사건은 학내에서 ‘서울대 A교수 사건’으로 불리며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대 학생들은 특별위원회를 꾸려 대응했고 같은 해 5월에는 전체 학생총회를 열어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B씨는 같은 해 6월 A교수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고, 학생들은 7월 약 한 달간 A교수의 연구실도 점거했다. 결국 서울대는 같은 해 8월 강제추행을 이유로 A교수를 해임했다.
사건을 접수한 수사 기관에서는 A교수의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A교수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A교수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A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들도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번복되며, 사건 직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 비춰볼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불쾌감은 인정되지만 이를 강제추행죄에서 정하는 추행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서울대 인권센터, 경찰, 1심 법정에서 한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데 대해 수긍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며 “피고인의 일부 행위는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추행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불복했지만 대법원의 판단 역시 무죄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A교수는 “하지도 않은 일을 증명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며 “세 번에 걸친 사법부의 무죄판결로 뒤늦게나마 억울함을 풀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잘못 알려진 많은 것들이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B씨 측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A교수는 입장문을 통해 “여러 왜곡과 비난도 있었지만, 교육자로서 오로지 법적 테두리 내에서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일념으로 인내하고 인내하는 긴 시간을 버티고 견뎌왔다”며 “배심원들로 참여한 우리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 그리고 진실을 살펴보아 주시는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에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가질 따름”이라고 밝혔다.
A교수는 각종 민사·행정 소송도 겪고 있다. B씨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A교수를 상대로 2020년 6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B씨 측은 항소했으나 대법원의 무죄판결 이후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했다.
A교수도 자신이 제기한 해임처분취소 청구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기각되자 이에 불복해 2020년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는 A교수가 이겼지만 서울대 측이 항소해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A교수는 “대법원 판결을 기초로 좀 더 엄밀하고 엄정하게 A교수의 인권을 회복하는 법적 구제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