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벌어진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신모(28)씨가 사건 3개월 뒤에야 뇌사 상태인 피해자 A씨(27)와 가족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처음으로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씨는 지난 8월 약물에 취한 채 차량을 몰다 지나가던 A씨를 쳐 중상을 입혔다. 오는 15일 3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법원에 사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A씨의 오빠는 최근 대구 달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일 신씨가 변호인을 통해 사과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의향을 보내왔지만 거절했다”며 “사고 이후 한 번도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형량 받기 직전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저희 쪽에 편지 주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A씨 오빠는 “어이가 없다. 구속되기 전에도 얼마든지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합의는 없을 것”이라며 “동생에게 구호 조치도 안 하고 불법 마약류 투약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카메라 앞에서만 반성하는 척하던 신씨에게 더 화가 난다. (신씨가) 수사받고 있는 마약류 사건까지 모두 합해 엄벌 받기를 가족 모두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15일 열리는 신씨 재판에서 A씨 오빠를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향후 재판에서 A씨 오빠가 증인석에 설 수 있게 된다.
대구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는 있는 A씨는 8일 현재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추정 상태에 있다.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의식 없이 계속 누워 있는 탓에 신체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한다. A씨 오빠는 “장기기증 절차 없이 뇌사 판정을 받을 방법은 없다. 의사가 이 상태로 6개월이 지나면 그냥 식물인간 상태로 생각을 하라고 했다. 저희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A씨 부모는 하루 한 번 주어지는 30분 면회 시간 동안 하염없이 딸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A씨 오빠는 “운동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부모님은 이제 관계를 끊고 살고 계신다. 가족들 모두 동생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고향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업계에서 일하는 꿈을 꿨다고 한다. 1년 전쯤 서울에 있는 영화배급사 정직원에 합격하면서 같은 꿈을 가진 친구 2명과 함께 상경했다. 오빠는 “동생은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매일 통화를 했다. 적은 월급에도 부모님께 용돈을 꼬박꼬박 드렸던 착한 아이였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난 8월 2일 오후 8시45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길을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A씨 오빠는 A씨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오빠는 “처음에 병원 올 때까지만 해도 의사에게 ‘오른쪽 다리가 너무 아프다. 살려달라’고 말할 만큼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 있던 가족이 연락을 받은 건 사고로부터 3시간여 후인 밤 11시30분이었다. A씨 오빠는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동생 지갑에 있는 주민등록증 주소를 보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수소문한 끝에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족은 곧장 서울로 올라가 병원에서 밤새 기다리다 다음 날 아침 6시에서야 수술 집도의를 만났다. 그는 “동생의 상태가 전신 골절이라는 말을 들었다. 특히 오른쪽 다리가 종아리 밑부터 허벅지까지 동맥이 다 찢어지고, 자동차에 깔려 감염까지 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뇌사 의심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3일 뒤였다. A씨 오빠는 “5일 새벽, 의사에게 동생의 폐에 물이 차 산소 공급이 안 돼 뇌가 손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사고 후 충격으로 다른 장기를 손볼 수 없었는데 몸이 회복이 안 된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해자 신씨는 재판과 수사에서 ‘뺑소니’나 ‘마약류 투약’ 등 주요 혐의 쟁점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피해자를 법률 대리하고 있는 권나원 변호사는 “재판에서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고 하지만, 이건 면피하고자 하는 수사적인 표현”이라며 “현장을 떠나 도주한 것, 치료 목적과 관계없이 마약류를 투약한 것 모두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과 자체가 진정성이 없고 피해자에게 용서받기 위한 사과라고 볼 수 없는 사과”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신씨의 마약류 불법 투약 혐의 등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구=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