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성직자의 ‘헌팅포차’ 체험기…“기독교 세계관 흔들 수도”

입력 2023-11-07 15:08 수정 2023-11-07 15:34
이예준(가운데) 안산꿈의교회 목사가 지난달 31일 '성지순례'에 나와 타로 상담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정재규 신부, 이 목사, 자운 스님. 유튜브 캡처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3명의 성직자가 젊은 세대들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타로 점집과 헌팅포차(처음 만나는 남녀를 매칭시키는 선술집) 등을 방문해 체험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도들의 기독교 세계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독 전문가들은 이들이 종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반응임을 참고하면서 비판적 자세로 시청할 것을 강조했다.

7일 방송계에 따르면 MBC 에브리원은 매주 화요일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등 3명의 성직자가 속세 체험기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 ‘성지순례’를 선보이고 있다. 프로그램은 이예준 안산꿈의교회 부목사를 비롯해 자운 스님과 정재규 신부 등 3명의 성직자가 젊은 세대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을 직접 체험하고 각자의 종교관을 접목한 후기를 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31일 방영된 프로그램에서는 3명의 성직자가 타로점을 보기도 했으며 헌팅포차에 방문해 이성과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모습이 나왔다. 타로점을 처음 접한 이 목사는 타로가 미신이라고 하면서 언제쯤 결혼하냐고 질문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어진 체험기를 전하는 차례에서 이 목사는 출연진에게 “외롭고 마음이 공허한 분들이 이를 채우기 위해 이런 곳(타로 점집, 헌팅포차 등)을 찾아가는 것 같다”며 “외롭고 공허한 마음의 상태는 기독교에서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인간 세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에게는 공허함과 외로운 마음이 당연히 있다. 이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하나님)에게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반응에 출연진들은 기승 전 (기독교) 마케팅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기독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이 성직자들에게 다음세대의 생각과 마음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연출로 인해 과도한 상황화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상황화는 주어진 문화적 상황 속에서 복음과 교회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을 일컫는 기독교 용어다.

지난달 31일 방영된 성지순례 일부. 유튜브 캡처

주상락 미국 바키대학원대 선교학 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세 종교의 성직자가 나와 다음세대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종교관을 더한 후기를 전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 자체는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목회자가 주술·샤머니즘적 성향을 띠는 타로집을 비롯해 기독교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장소를 가는 행위는 성도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교학자 폴 히버트의 ‘비판적 상황화’를 언급하면서 “성도들은 성경과 신앙을 기준으로 해 모든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닌 비판적인 자세로 이 같은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문화를 여과없이 수용한다는 것은 상황화를 넘은 것”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기독교 콘텐츠 전문가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세 성직자들은 개인의 입장으로 반응을 내놓지만, 시청자들은 그게 각 종교의 전체 이미지인것처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PD의 기획 의도를 비롯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에 따라 프로그램에는 변수가 수없이 많다. 신중한 자세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