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해법을 놓고 아랍 국가와 이견만 노출했다. 블링컨 장관은 휴전 반대와 인도적 차원의 일시적 교전 중단을 주장했지만, 아랍 국가들은 면전에서 거부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 급증으로 국제 사회 여론이 악화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타격을 받는 양상이다.
블링컨 장관은 4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집트 등 4개국 외무장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무총장 등과 회의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휴전은 하마스가 전열을 정비해 10월 7일에 했던 일을 반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방어할 권리와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메 쇼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무고한 민간인과 의료시설, 구급대원을 표적으로 삼고,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집단적 처벌은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며 “조건 없는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중동) 지역 전체가 적대감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으며, 그것은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 광기를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은 전쟁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이견을 공개했다”며 “아랍 지도자들은 가자지구 미래를 위한 심층 논의도 거부하고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서 미국의 외교적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가자지구 내 인도적 지원 보장과 인질 석방을 위한 일시적 교전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이스라엘 반대에 부딪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블링컨 장관의 공식 제안에 대해 “인질 석방이 포함되지 않은 일시적 휴전안은 거부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러나 이날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임시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 희생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며 인도적 교전 중단이 가자지구 민간인을 보호하는 중대한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델라웨어주 성당 미사 참석 후 ‘인도적 교전중단에 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yes)”고 답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인도주의적 일시 교전 중단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난관에 부딪혔다”며 “블링컨 장관의 순방은 가자지구 민간인 사망자수에 대한 국제적 분노와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 사이에서 미국이 처한 곤경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