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미국 내 반이스라엘 정서가 확산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비상이 걸렸다.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젊은 층에서도 민심이반이 나타났다. 아랍계 유권자에 이어 젊은 층 유권자까지 바이든 행정부에 등을 돌리면서 내년 대선 행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4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프리덤플라자가 군중으로 가득 찼다.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하는 단체 모임 ‘앤서’(ANSWER·전쟁을 끝내고 인종 차별을 멈추는 행동)가 주최한 항의시위에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거나 ‘학살을 멈추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즉각 휴전”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지원 중단” 등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우리는 당신을 대량학살 혐의로 고발한다”며 “휴전이 없으면 투표도 없다”고 압박했다. 이들은 집회 후 인근 행진에도 나섰다.
앤서 측이 신고한 집회 규모는 3만 명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 대의 버스를 대절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권리 단체뿐만 아니라 전국변호사협회, 반전단체, 환경단체, 성소수자 지지모임 등 바이든 행정부를 지지해 온 진보 성향 단체 수십 곳도 동참했다. 하마스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반격 이후 최대 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설명했다.
앤서 측 브라이언 베커 이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미국의 대중적 지지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며 “팔레스타인 사람 1만 명은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신분 때문에 죽었다”며 “대량학살”이라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권리 캠페인 이만 아비드-톰슨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메인주 오로노와 같은 소도시에서도 (팔레스타인지지) 행진이 벌어졌다”며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 전술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젊은 층과 민주당원 지지가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퀴니피액대가 지난 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하마스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 대응에 찬성하는 응답은 50%에 불과했고, 특히 18~34세 유권자 사이에선 32%에 그쳤다. 이들 18~34세 유권자 65%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더 많은 군사지원을 보내는 것도 반대했다.
민주당원 사이에 이스라엘 대응 찬성 여론은 33%였고, 49%는 반대했다. 하마스 공격 직후인 지난 8~10일 이코노미스트·유거브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내 이스라엘 지지 여론이 59%였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도 지난 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전쟁이 확대되면서 이스라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민주당원 대다수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메릴랜드대와 공동으로 벌인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접근 방식 때문에 대선 때 그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답변은 30.9%였다. 투표 가능성이 커졌다는 답변은 14.2%였다. 특히 민주당원 10.8%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작아졌다고 답했다.
시블리 텔하미 선임연구원은 “(초기와 달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민주당 지지층들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계인 민주당 소속 라시다 틀라이브 하원의원은 전날 엑스(X·옛 트위터)에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지지했다’는 문구가 적힌 동영상을 게재하며 “지금 휴전을 지지하지 않으면 2024년 (대선 때) 우리에게 (지지를) 기대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