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계부, 영장 3번 반려”… 그사이 두 여중생 숨져

입력 2023-11-02 06:56 수정 2023-11-02 10:14
2021년 5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한 아파트 화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을 추모하는 헌화가 놓여있다. 뉴시스

계부가 중학생인 의붓딸과 그의 친구를 성폭행해 이들 두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한 경찰 수사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피해 여중생 중 한 명인 A양 유족이 1일 청주지검으로부터 받은 경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시 청주 청원경찰서는 성폭행 가해자 계부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며 모두 반려했다.

경찰은 2021년 3월 10일 피의자에 대한 첫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A양 유족이 같은 해 2월 1일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계부가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한 차례 받은 점으로 미뤄 도주 우려 등이 없다면서 이를 기각했다.

8일 뒤 경찰은 다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다음날 “피해자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녹화하지 않는 등 절차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지인들과 이 사건에 대해 주고받은 문자 내용 등 객관적인 자료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이로부터 두 달 가까이 지난 5월 11일 경찰이 성범죄 피해가 의심된다는 병원 진료기록부 등을 첨부했지만 검찰은 이틀 뒤 진술 분석 등을 요구하며 재차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 조사를 받던 두 여중생은 같은 달 12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계부에 대한 구속영장은 고소장 접수 113일 만인 5월 25일에야 발부됐다. 경찰의 부실 수사와 검찰의 거듭된 영장 반려로 수사가 4개월가량 지연되는 사이 비극이 벌어졌다고 유족들은 토로했다.

2021년 8월 진행된 '오창 여중생 사망 100일 추모제'. 청주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2명이 성범죄 피해로 조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뉴시스

수사보고서를 본 A양 유족은 “경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한 점, 검찰이 피해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임해 수사가 지연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영장 발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신속하게 분리됐더라면 두 여중생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인 유족 측은 공개된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대전고법 청주 제1행정부는 A양 유족이 청주지검을 상대로 낸 정보 부분 공개 결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수사보고서 일부를 공개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청주 두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계부는 2021년 6월 청주에서 의붓딸과 그의 친구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친딸이 새 남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딸을 보호하지 않는 등 양육을 소홀히 한 친모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피해 여중생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동안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