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도지사 임명 강행 논란

입력 2023-11-01 18:12 수정 2023-11-02 10:29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유족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국민일보 자료사진

제주도가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도지사가 임명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1일 제주도는 제주4·3평화재단에 책임있는 경영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조례’의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달 21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4·3재단의 현재 비상근 이사장을 상근 이사장으로 전환하고, 이사장과 이사를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도지사가 임명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도는 4·3재단이 국가와 제주도로부터 매년 100억원 상당의 출연금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도내 다른 출자출연기관과 동일한 경영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4·3 정책 추진에 대한 도정 책임을 강화하고, 투명한 재단 경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단은 즉각 반발했다.

재단은 지난 30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제주도가 조례 개정을 강행할 경우 총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모았다.

이어 고희범 재단 이사장이 31일 오영훈 도지사를 만나 개정 중단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고 이사장은 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고 이사장은 이날 재단 홈페이지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직을 사퇴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재단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이사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고 이사장은 “4‧3의 해결은 국가의 책무이며, 따라서 재단은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면서 “재단의 운영 지원을 이유로 이사장과 이사의 임명권을 도지사가 가지려는 시도는 4‧3의 방향을 되돌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재단 밖에서도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선출직인 도지사가 이사장을 임명할 경우 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법이나 관련 조례를 근거로 설립된 여타 출자출연기관과 달리 역사적 아픔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가 재단과 사전에 공식적인 논의없이 촉박하게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점을 놓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당초 도는 내주 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고 이사장의 사의 표명이 공식화되고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일정을 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날 오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입법예고 계획을 알렸다.

조상범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조례 개정은 출자출연기관의 목적에 맞게 지도감독하려는 것”이라며 “입법예고 기간 재단 측과 논의하고 연내 제주도의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2008년 4·3특별법을 근거로 민관협력단체로 출범했고, 2015년 출자출연기관으로 전환됐다. 자체 정관에 따라 전국 공모를 통해 이사진을 구성하고, 이사장을 선출해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