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자 난민캠프 공습…민간인 참변에도 美 “고의 아냐”

입력 2023-11-01 07:33 수정 2023-11-01 07:47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캠프를 공습해 수백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지휘관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규모 민간인 밀집 지역에 공중 포격을 가한 것이어서 비난이 확산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즉각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미국은 고의적인 게 아니라고 옹호했다. 미국은 다만 인도적 지원을 위한 일시적 전투 중단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31일(현지시간) “자발리아 난민캠프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으로 최소 50명 이상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부상했다”며 사상사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자발리아 사상자 수가 400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현장을 목격한 모하마드 이브라힘은 “빵을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F-16 전투기에서 미사일 7~8발이 발사되는 것을 봤다”고 CNN에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고위 지도자인 이브라힘 비아리를 겨냥한 것이었다며 이번 공격으로 그를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다니엘 하가리 군 대변인은 “비아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해당 근거지에 진입해 지하 터널과 로켓 발사대, 무기 창고 등을 발견했다”며 “이 과정에서 자발리아여단 지휘관 비아리와 50여 명의 테러범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NYT)는 그러나 “이번 공격은 지상전 확대로 인해 더 많은 민간인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미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가중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켰다”며 “미국과 동맹에 시험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수위를 확대했다. 요르단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난민캠프를 목표로 한 이스라엘 공격을 가장 강력한 말로 규탄한다”며 “모든 인간적, 도덕적 가치와 국제인도법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지속적인 (공격) 확대로 인한 위험한 인도적 상황은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며 “군사작전 중단을 즉각 준수하지 않으면 이스라엘군과 국제사회가 책임져야 할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역시 “야만적인 공격을 가장 강력한 말로 규탄한다”며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 범죄의 긴 목록에 또 다른 오점”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의 개별 공격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는 무고한 생명 보호와 법률 존중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공개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미국은 인간 생명을 존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스라엘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그들이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명백하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지금은 일반적 의미의 휴전을 할 때가 아니지만 (인도적 지원을 위한) 전투 중단은 검토할 때가 됐다”며 “인도적 일시 교전 중단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오래, 무슨 목적으로 할지에 대해 양측에서 신뢰할 만한 지지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하마스와 소통이 가능한 국가를 포함한 (중동) 지역의 파트너들과 그것(인도적 차원의 일시적 전투중단)이 가능한지 보기 위해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인도주의적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크레이그 모키버 뉴욕주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R) 국장은 가자지구 민간인 대량 학살을 비난하며 사임했다.

모키버 국장은 볼커 터크 유엔 인권최고대표(고등판무관)에 보낸 서한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대량 학살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으며, 우리가 봉사하는 조직은 이를 막을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모키버 국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지금의 대대적인 학살은 신분에 근거해 수십 년간 계속된 체계적인 박해와 숙청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대량 학살의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 영국, 유럽 대부분이 제네바 협약에 따른 ‘조약 의무 이행’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무장시키고 정치·외교적 은폐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당 서한은 지난 28일 제출됐으며, 모키버 국장은 본래 오는 2일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