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강경 대책을 언급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지에 대한 반감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독이 된 셈이다. 거꾸로 유대계는 미국 내 반이스라엘 혐오 증가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해 바이든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싱크탱크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31일(현지시간) 아랍계 미국인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지난 23~27일)해 발표한 ‘2024년 대선 가상 대결’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17%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59%에서 42% 포인트나 감소한 수치다.
거꾸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같은 기간 35%에서 40%로 5% 포인트 상승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도 13.7%의 지지를 받았다.
당적 변경도 나타났다.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23%로 지난 대선(40%) 때보다 17% 포인트 줄었다. 반면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32%로 같은 기간 8% 포인트 늘었다. 당적이 없는 무당파라고 밝힌 응답자도 31%로 1996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로 증가했다.
응답자 67%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응답자 대다수는 전쟁이 반유대주의(67%)나 반아랍(78%) 편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응답자 과반(58%)은 이미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로 쪼그라들었고, 아랍계 유권자 66%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아랍계가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대선 경합주에서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기 어렵다. AAI는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2024년 대선에서 아랍 유권자 지지율 하락과 정당 선호도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아랍계 유권자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가 이번처럼 떨어진 건 지난 26년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계열의 전국무슬림민주협의회는 이날 ‘2023 휴전 최후통첩’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무조건적인 지원은 민간인 사상자를 초래하는 폭력을 지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권자 신뢰를 약화했다”며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을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와 투표를 보류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 유대계도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명예훼손방지연맹(ADL), 미국 유대인 위원회(AJC) 등 유대계 모임 지도자 12명은 이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 미구엘 카르도나 교육 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대학 내 반유대주의 급증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조너선 그린브랫 AJC 이사는 “우리는 미국 전역에서 수백 건의 하마스 옹호 집회를 봤다.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며 “지역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불안을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이날 의회에서 “지난 수 주간 여러 외국 테러 단체가 미국인과 서구에 대한 공격을 촉구했다”며 “가장 시급한 우려는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이 하마스의 공격에 영감을 받아 일상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