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북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던 고(故) 오경무씨가 재심을 통해 5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는 1967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오경무씨와 그의 여동생 오모씨의 재심 사건에서 30일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가 이날 무죄가 선고된 여동생 오씨는 “소중한 오빠였기에 충격이 컸지만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재심 결과가 감사하고 놀랍다”고 심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적법한 조사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범행을 자백했다는 진술조서가 불법 체포 등 가혹행위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오경무씨가 북한에서 돌아온 형제 오경대씨를 만난 사실은 인정되나 북한 지령을 받은 자를 만났다고 볼 증거는 충분히 없다”며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주의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경무씨는 1967년 동생 오경대씨와 함께 이복형 오경지씨를 만나러 월북했다가 붙잡혔다. 6·25전쟁 때 사라졌던 오경지씨는 간첩이 돼 나타났고 “일본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오경대씨를 속여 먼저 북한으로 끌고 갔다. 나흘 만에 탈출한 오경대씨는 이후 “남은 가족들을 해치겠다”는 오경지씨의 협박에 오경무씨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경무씨는 동생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가 40여일간 사상교육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한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오경무씨는 사형을, 오경대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여동생 오모씨는 오경무씨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오경무씨의 사형은 1970년대 초에 집행됐다.
앞서 동생 오경대씨는 재심을 통해 53년 만인 2020년 11월에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이날 “당시 시대 상황 속에서 가족의 정에 이끌려 한 행위로 인해 가족 전부에게 가혹한 행위가 발생한 점에 대해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