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4일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30대에 접어든 KBO 유턴파 투수 한 명과 2년 55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2010년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었으나 빅리그 경험은 전무했다. 로테이션 후반부를 메워주는 정도가 현실적 기대치였다.
5년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2년 연속 정규시즌 10승에 3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팀의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었다. 포스트시즌 들어서도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4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2.25로 연일 철벽 모드를 이어갔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선 팀을 탈락 위기로부터 건져냈고 월드시리즈에선 귀중한 첫 승을 팀에 안겼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완투수 메릴 켈리다. 켈리는 29일(한국시간) 미국 알링턴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타선을 7이닝 1실점으로 잠재우고 승리 투수가 됐다. 안타는 3개만 내줬고 삼진을 9개나 잡아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
애리조나 주립대를 거쳐 2010년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한 켈리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한 채 5년을 보냈다.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2014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전신)가 손을 내밀었다. 선발 보직을 보장해준다는 제안이 매력적이었다.
켈리의 한국행은 ‘신의 한 수’가 됐다. KBO리그에서 4년간 견고한 모습을 보이며 충분한 선발 경험을 쌓았다. 구속이 올랐고 변화구 레퍼토리도 다양해졌다. 이를 발판으로 2019시즌 빅리그에 안착한 켈리는 기대를 웃도는 투구로 로테이션 한자리를 꿰찼다.
이후 행보는 그간 KBO가 ‘역수출’한 외국인 중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첫해 13승(14패)의 수준급 성적을 거뒀고 지난해는 13승 8패 평균자책점 3.37로 만개했다. 올해는 평균자책점을 더 끌어내리며 1선발 잭 갤런과 더불어 애리조나의 선전을 쌍끌이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마일스 미콜라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함께 아시아 유학파의 대표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
켈리의 ‘행복 야구’는 현재진행형이다. 1승 1패로 균형을 맞춘 애리조나와 텍사스가 5차전 이내에 승부를 결정 짓지 못할 시 켈리는 다시 한번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를 전망이다. 최종 결과와 별개로 다음 시즌 입지도 확고하다. 앞서 체결한 계약에 따라 2024시즌 800만 달러의 연봉을 보장받는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