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을 확대하면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로 진입하는 동안 레바논 국경을 따라 헤즈볼라의 교전도 확대되며 전쟁이 제2의 전선으로 확대될 조짐도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은 레바논 거주 자국민에 ‘즉시 철수령’을 발동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8일(현지시각) 텔아비브에서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 전시 비상내각과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추가로 투입되며 하마스와 전쟁 2단계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는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개시 결정은 전시 비상내각과 안보 부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목표는 하마스의 군사·통치 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고, 인질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공중폭격’→‘가자지구 지상전’→‘하마스 제거 및 새 안보 체제 구축’ 등을 하마스와의 전쟁 3단계 시나리오로 제시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만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된 것인에 대한 질문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에 있다”고 언급하며 확답을 피했다. 갈란트 장관도 “우리 군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다”고만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네타냐후 총리나 이스라엘군 당국자 모두 이번 작전을 침공이라고 공개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하마스 공격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가장 야심찬 지상 공격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일부를 장악하며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민간인 사상자 증가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에 대해 “우리 군을 전쟁범죄자로 비난하는 이들은 위선자”라며 “진짜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 하마스”라고 말했다. 또 “서방 동맹과 아랍 세계 파트너들은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지상전 확대를 비판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긴급 아랍연맹 정상회담 소집을 촉구하며 “이스라엘은 (휴전을 촉구한) 유엔 결의안에 더 많은 폭격과 파괴로 대응했다”고 비판했다.
사우디 외무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지상 침공하는 모든 행위를 규탄한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최근 군사적 확대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그들을 더 많은 위험과 비인도적 상황에 노출시킨다”고 밝혔다. UAE와 이집트도 이스라엘 지상전을 비난하고 인도주의적 위기 악화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수도 이스탄불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석해 “우리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이 전쟁범죄자라는 것을 선언한다. 하마스는 테러조직이 아니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인도주의적 휴전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의 폭격이 발생하고, 피해가 커져 놀랐다”며 “인도적 지원을 위한 즉각적인 휴전과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진군하는 사이 레바논 국경을 따라 이스라엘과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 헤즈볼라 간 충돌도 격화했다. 레바논 국영언론은 이날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영토에 대해 사상 최대 공습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양측 교전이 벌어지는 동안 레바논 남부의 유엔 평화유지군 본부도 포격을 당했다.
미 국무부는 전날 레바논에 있는 모든 미국 시민에게 “중동 지역 안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국민에게 “지금 떠나라”고 권고했다. 또 “위기 상황이 닥치면 레바논에 있는 미국인의 대피를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시리아 동부 지역 시설 2곳을 공습한 이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이란과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들이 미국에 대한 추가 공격을 수행하거나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공격을 지시했다”며 “추가 조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